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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PHALOS 통합 자료집

함께 밥을 먹자 · 답사 종합보고서 · 세종 700미터 문화경관

Philosophy · Field Study · Policy Proposal

대통령하고도 바꾸지 않는 직업,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이 판(v5)은 2026년 6월 18일 전의·예안이씨화수회본부 현창위원장 자격으로 작성한 자료집을, 2026년 10월 9일 한글날에 건축사 이춘화 개인 명의로 고치고 제7부·제8부·제9부를 더해 하나로 묶은 것이다. 고친 곳은 맨 끝 「고친 기록」에 적었다.

서문 ― 하나의 길, 여섯 개의 문

이 자료집은 서로 다른 여섯 편의 문서를 하나로 엮은 것이다. 성격은 다르나, 모두 같은 길 ― 세종 전의면의 700미터에서 출발해 금강을 따라 공주와 대전으로 넓어지는, 사랑나무에서 시조의 안식처에 이르고 다시 한 권역으로 퍼지는 길 ― 을 향한다.

제1부 『함께 밥을 먹자』는 그 길의 정신을 밝히는 철학(선언)이다. 제2부 『K-OMPHALOS 답사 종합보고서』는 그 정신을 세계의 현장에서 검증한 기록이다. 제3부 『세종시 유교문화권 700미터 문화경관』은 그 정신과 검증을 행정의 언어로 옮긴 정책 제안이다. 제4부 『금강 이도길 마스터플랜』은 그 길을 공주 신관동에서 세종 심중매원으로 잇는 물길의 구상이며, 제5부 『금강의 기적』은 세종·공주·대전을 하나로 묶어 미래를 여는 권역 선언이다. 제6부 『걸어라, 그 다음에 결정하라』는 영암고 기숙사가 묻는 ‘판단 이전의 구조’에서 출발하여, 대통령과 국가의 책임으로 나아가는 선언이다.

철학에서 출발하여(왜), 답사로 검증하고(어떻게), 정책으로 착지하며(무엇을), 마스터플랜으로 길을 잇고(어떻게 잇는가), 권역 보고서로 미래를 선언하며(어디로), 대통령 제안으로 결단을 청한다(누가). 여섯 개의 문은 결국 하나의 길로 통한다 ―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목 차

서문 ― 하나의 길, 여섯 개의 문

제1부. 함께 밥을 먹자 ― 영화적 건축 선언 (철학)

제2부. K-OMPHALOS 답사 종합보고서 ― 델피에서 세종까지 (기록)

제3부. 세종시 유교문화권 700미터 문화경관 ― 시조 이도 현창 정책 건의 (제안)

제4부. 금강 이도길 마스터플랜 ― 노를 받은 강에서 다시 노를 젓다 (구상)

제5부. 금강의 기적 ― 세종·공주·대전을 잇는 정신문화 권역 보고서 (선언)

제6부. 걸어라, 그 다음에 결정하라 ― 판단 이전의 구조와 대통령 제안 (선언)

제7부. 나는 영화적 건축을 했을 뿐이다 ― 2026년 한글날의 글

제8부. 『동양평화론 2026』 요약 ― 1910년의 질문, 2026년의 응답

제9부. 「가전충효 세수인경」 연구 요약 ― 사실과 전승의 층위

2026년 · 건축사 이춘화 펴냄

제 1 부

함께 밥을 먹자

Together at the Table — A Manifesto of Cinematic Architecture

이 길의 정신을 밝히는 철학 선언

함께 밥을 먹자

Together at the Table

함께 걷자. 함께 앉자. 함께 밥 먹자. · Walk Together. Sit Together. Share a Meal Together.

영화적 건축 선언 · A Manifesto of Cinematic Architecture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 The Road Back to One Another

요약

In Brief

사람은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가장 많이 연결된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장 멀어졌다.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In the end, a person lives to meet another person. Yet in the most connected age, people have never been further apart. What humanity has lost is not technology, but relationship.

영화적 건축은 건물을 짓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게 하는 건축이며, 공간을 관계로, 관계를 공동체로 잇는 일이다.

Cinematic architecture is not the craft of raising buildings. It is the architecture that brings people back to one another — joining space into relationship, and relationship into community.

세종 유천리의 700미터 길은 사랑나무에서 시조의 안식처까지 이어진다. 탄생에서 삶으로, 삶에서 돌아 감으로 —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된 길이며, 영화적 건축이 땅 위에 구현된 모습이다.

The 700-meter path in Sejong runs from the Tree of Love to the ancestral resting place: from birth, through living, to return — a single life compressed into a road, and cinematic architecture realized upon the earth.

그래서 우리는 가장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함께 걷고, 함께 앉고, 함께 밥을 먹는 일. 평화는 거기서 시작된다.

And so we begin with the smallest thing: to walk together, to sit together, to share a meal together. Peace begins there.

1.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What Does a Person Live For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돈을 위해서인가, 권력을 위해서인가, 더 높은 자리를 위해서인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같은 물음을 되풀이해 왔다.

What does a person live for? For money, for power, for a higher place? Humanity has repeated this question for thousands of years.

그러나 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살아간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며, 언젠가 먼저 떠난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살아간다.

Yet the answer may lie nearer than we think. In the end, a person lives to meet another person — born to love someone, living alongside someone, and one day living to meet again the one who left before us.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이 연결된 시대를 살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장 멀어지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관계는 퇴화하고 있다.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사람을 만나는 능력이며, 함께 밥을 먹는 능력이다.

We live in the most connected age in history, yet person and person have never been further apart. Technology has advanced, but relationship has withered. What humanity has lost is the ability to meet one another — the ability to share a meal.

2.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

Those Who Cannot Share a Meal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헤어진 한 소녀가 있었다. 전쟁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소녀는 아흔이 넘어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그 시점까지, 평생 그리워한 아버지와 밥 한 끼 함께 먹지 못했다.

A girl of seventeen was parted from her father. War tore them apart. Now past ninety, drawing her life to a close, she has still never once shared a meal with the father she longed for all her years.

냉전의 한복판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마주 앉아 이야기했다. 그런데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조상을 둔 사람들이, 왜 스스로 마주 앉지 못하는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왜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가.

Even at the height of the Cold War, Washington and Moscow sat down to talk. Why, then, can a people of one tongue and one ancestry not sit down with one another? Why can people who speak the same language not share a meal?

3.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This Is Not Korea's Story Alone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늙어가는 부모는 홀로 식사하고, 자식은 멀리 떨어져 산다. 이웃은 서로의 이름을 모르고, 한집에 살아도 각자의 화면만 들여다본다. 분단은 그 단절이 가장 극단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The inability to share a meal is not Korea's alone. Aging parents eat alone while their children live far away. Neighbors do not know each other's names; under one roof each stares into a separate screen. Division is only the most extreme face of that severance.

대한민국은 전쟁과 분단, 이산가족과 급속한 산업화, 공동체의 해체와 오랜 제례의 전통을 한 세대 안에서 모두 겪은 나라다. 그래서 우리는 단절을 알고, 또한 재회를 안다. 바로 그 아픔을 겪었기에, 우리는 이 말을 건넬 수 있다. 함께 밥을 먹자고.

Korea has known, within a single lifetime, war and division, separated families and rapid industrialization, the unraveling of community and the long tradition of honoring those who came before. And so we know severance, and we also know reunion. It is because we have known that grief that we can offer these words: let us share a meal together.

4. 밥 한 그릇 안에 든 것

What a Single Bowl Holds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끼니를 나누는 일이 아니다. 같은 상에 앉으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밥상 앞에서 가족은 가족이 되고, 흩어졌던 기억이 다시 모인다.

To share a meal is never merely to share food. At one table we tell our stories. There a family becomes a family again, and scattered memory gathers back together.

그렇게 밥은 가족이 되고, 가족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시간이 된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란, 사람의 시간이 모이는 자리다.

So a meal becomes family, family becomes memory, and memory becomes time. The shared table is where human time itself is gathered.

5. 영화적 건축이란 무엇인가

What Is Cinematic Architecture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이라는 한 편의 영화의 주인공이다. 누구도 단역이 아니다. 영화에는 주인공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Each of us is the protagonist of our own life — one whole film. No one is a mere extra. In a film there is never only the lead; everyone who walks the path is the protagonist.

일반 건축은 공간을 만든다. 영화적 건축은 관계를 만든다. 일반 건축은 건물을 남긴다. 영화적 건축은 사람을 남긴다. 그러므로 건축의 목적은 건물이 아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Ordinary architecture makes space; cinematic architecture makes relationship. Ordinary architecture leaves behind buildings; cinematic architecture leaves behind people. The purpose of architecture, then, is not the building — it is to bring people back to one another.

6. 영화적 건축의 뿌리 ― 네모난 고래에서 현창까지

The Roots — From the Square Whale to Hyeonchang

그 씨앗은 2007년, 한 발전소의 작은 건물을 설계하던 자리에서 이미 심어졌다. 그때 한 건축가는 꼬리 없는 고래를 그렸다. 꼬리 없는 고래는 꿈을 품을 때 비로소 사랑의 꼬리가 생긴다.

Its seed was planted in 2007, in the design of a small building at a power station, where an architect drew a tailless whale. Only when the tailless whale holds a dream does a tail of love appear.

2009년, 한 교육시설의 설계를 검토하는 자리에서 그 생각은 ‘영화적 건축’이라는 분명한 이름을 얻었다. 그 시작은 아이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양심이었다.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기능보다 생명이 먼저이며, 설계보다 양심이 먼저다.

In 2009, in the review of a design for an educational facility, the thought took on a clear name: cinematic architecture. It began in the conscience of not turning away from a child — people before buildings, life before function, conscience before design.

한국인에게는 이 정신을 가리키는 오래된 말이 있다. 현창(顯彰)이다. 기념이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라면, 현창은 잊힌 사람을 현재에 다시 불러 세우는 한국적 영화적 건축이다.

Koreans have an old word for this spirit: hyeonchang. If commemoration preserves the past, hyeonchang is Korea's own cinematic architecture — the art of calling the forgotten back into the present.

7. 700미터 ―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된 길

700 Meters — A Life Compressed into a Path

사랑나무에서 시조의 안식처까지, 한 줄기 길이 있다. 700미터, 걸어서 열일곱 분. 그러나 그것은 거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된 서사다.

From the Tree of Love to the founding ancestor's resting place runs a single path: 700 meters, some seventeen minutes on foot. Yet it is not a distance — it is one human life, compressed into a road.

길은 사랑나무에서 시작한다(탄생). 가운데 철길 건널목이 가로지른다(삶 ― 멈추고, 기다리고, 다시 건넌다). 길의 끝에는 시조의 안식처가 있다(돌아감). 사랑나무는 미래, 철길은 현재, 시조의 안식처는 과거다. 700미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걸음 안에 잇는다.

The road begins at the Tree of Love (birth); midway a railway crossing cuts across (life — we stop, wait, and cross again); at its end lies the ancestor's resting place (return). The Tree of Love is the future, the railway the present, the resting place the past. Within 700 meters, past, present, and future are joined in a single stride.

산티아고의 길은 너무 멀고 오래 걸린다. 그러나 이 길은 열일곱 분, 700미터다. 그래서 이 길은 한 가족의 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길이다. 함께 걷자. 함께 앉자. 함께 밥 먹자.

The Camino de Santiago is long and takes many days. This is 700 meters, about seventeen minutes — and so it is not one family's road but every human being's road. Walk together. Sit together. Share a meal together.

8.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인가

What Shall We Live Remembering

이 길의 끝, 시조의 안식처에서 한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천 년을 이어 온 자리가 훼손되었고, 복원되었으나, 다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흙과 돌의 문제가 아니다. 한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At the end of this path, a place kept for a thousand years was damaged, restored, then lost again. But this is not a matter of earth and stone. It is a question of what a community will remember and what it will let go.

그 자리를 다시 세우려 애쓰는 동안, 후손들은 오랜 분단의 세월 속에서 잊고 지냈던 한 핏줄을 발견했다. 우리는 묘소를 찾고 있었지만, 실은 잊고 있던 사람들을 발견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돌과 흙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사람과 연결되는 능력이다.

As they labored to rebuild it, the descendants discovered a kindred line they had forgotten through the long years of division. We thought we were searching for a resting place — but we were discovering the people we had forgotten. What we seek to protect is not stone and earth, but the capacity to be connected to one another again.

9. 결국, 자기 가족에서부터

In the End, It Begins at Home

세계의 어느 민족도, 어떤 종교도, 어떤 사상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일이다. 그것도 매일이 아니다. 일 년에 단 하루, 조상 앞에 모이는 그날이다.

There is one thing no people, no religion, no ideology can forbid: a family sharing a meal. And not every day — but a single day each year, when kin gather before their ancestors.

평화는 거대한 자리에서 오지 않는다. 결국 자기가, 자기 가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일은 가장 작은 평화다. 그리고 모든 큰 평화는, 가장 작은 평화에서 시작된다.

Peace does not descend from high places. In the end, each of us must begin with our own family. A family sharing a meal is the smallest peace — and every great peace begins with the smallest one.

10. 왜 우리는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가

Why Can We Not Share a Meal Together

인류는 평화를 몰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어떤 국가도, 어떤 이념도, 어떤 종교도 사람보다 먼저일 수 없다.

We do not fight because we are ignorant of peace. It is only that, at some moment, we ceased to see a person as a person. No nation, no ideology, no religion can come before a human being.

전쟁은 총알이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사람으로 부를 때, 전쟁은 끝나기 시작한다. 영화적 건축은 그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War is not first made by bullets. It begins when a person is no longer seen as a person — and when we call one another human again, war begins to end. Cinematic architecture is the making of that place.

11. 왜 지금인가

Why Now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외로움은 이제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한 시대의 병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이다.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다시 마주 앉는 일이, 더 큰 말이 아니라 한 끼의 밥이 필요한 때다.

We are connected more closely than ever, yet we live further apart than ever. Loneliness is no longer one person's feeling but the sickness of an age. And so the time is now — what we need is not more technology but to sit face to face again, not grand words but a single shared meal.

12. 맺는 글

Closing

700미터의 길은 묘소로 가는 길이 아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길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자신의 뿌리를 만나고, 가족과 함께 걷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길이라는 점에서, 가장 인간적인 길일 수 있다.

The seven hundred meters is not a road to a tomb. It is the road back to one another. It is not the longest road in Korea — yet as the road where a person meets their roots, walks with family, and joins past to future, it may be the most human road of all.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가장 인간적인 증거다. 평화는 거대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곁의 사람과 함께 걷고, 함께 앉고,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What humanity has lost is not technology, but relationship. To share a meal is the most human proof that the bond has been restored. Peace does not begin in great places — it begins today, where we walk, sit, and share a meal with the person beside us.

사람은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살아간다.

In the end, a person lives to meet another person.

함께 걷자. 함께 앉자. 함께 밥 먹자.

Walk together. Sit together. Share a meal together.

2026년 6월 18일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제 2 부

K-OMPHALOS 답사 종합보고서

Comprehensive Field-Study Report

그 정신을 세계의 현장에서 검증한 기록

K-OMPHALOS 답사 종합보고서

델피에서 세종 700미터까지 ― 개념의 탄생부터 세계 코스 구상까지

Comprehensive Field-Study Report on the K-OMPHALOS Project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목 차

1. 보고 개요 ― 네 차례의 답사, 하나의 길 3

2. 제1차 · 그리스 (2022) ― K-OMPHALOS의 탄생 4

3. 제2차 · 이집트·그리스·튀르키예 (2023) ― 『700M』의 결실 5

4. 제3차 · 미소국 (2025) ― 작은 나라의 인간척도 6

5. 제4차 · 이탈리아 (2026) ― 감각의 채집 7

6. 종합 ― 세종 700미터로의 귀결 8

7. 결론 및 제언 9

붙임 ― 차수별 일정 요약 10

1. 보고 개요 ― 네 차례의 답사, 하나의 길

본 보고서는 K-OMPHALOS 및 세종 700미터 역사문화길 구상을 위하여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수행한 해외 현장 답사의 경과와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네 번의 답사는 각기 다른 지역을 향했으나,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한다.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만드는 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답의 출발점은 그리스 델피였다. 세계의 배꼽(Omphalos)이라 불린 그 자리에서 K-OMPHALOS라는 개념이 태어났고, 이후의 답사는 그 개념을 ‘인간척도’와 ‘감각’이라는 두 방법으로 검증하고 다듬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은 마침내 세종 전의면의 700미터,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소에 이르는 한 줄기 길로 귀결된다.

차수 기간 지역 참가 의의
1차

2022.9.9~9.16

(8일)

그리스 일주 이춘화·최금희·이유은 델피 ― 개념의 탄생
2차

2023.1.21~2.2

(13일)

이집트·그리스·튀르키예 이춘화·최금희·이유은 델피 재방문 ― 『700M』 결실
3차

2025.4.14~4.25

(10박12일)

미소국(유럽 소국) 최금희 외 5인 작은 나라의 인간척도
4차

2026.5.12~5.22

(11일)

이탈리아(토스카나·마테라·아말피) 최금희 외 5인 감각의 채집 방법론

참가자 표기 — 3·4차의 동행 5인은 본 프로젝트의 내용을 알지 못한 채 동행한 50·60대 전문직 여성(의사·치과의사·약사·기업가·교수)으로, 본 보고서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동연구자 최금희 외 5인’으로 익명 처리한다.

2. 제1차 · 그리스 (2022.9.9~9.16) ― K-OMPHALOS의 탄생

첫 답사는 그리스 일주 8일 일정으로, 이춘화·최금희·이유은이 동행하였다.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에서 시작해 산토리니, 델피, 메테오라, 테르모필레, 아테네로 이어졌다.

핵심 ― 델피의 옴팔로스

이 답사의 절정은 델피였다. 고대 그리스인이 ‘세계의 배꼽(Omphalos)’으로 여긴 그 돌 앞에서, 한 장소가 어떻게 한 문명의 중심이 되는가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중심은 크기로 정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걷고, 묻고, 기다릴 때 비로소 중심이 된다. 여기서 ‘K-OMPHALOS’ ― 한국의 배꼽, 사람이 잠시 멈추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자리 ― 라는 개념이 태어났다.

길 위에서 읽은 보조 단서들

3. 제2차 · 이집트·그리스·튀르키예 (2023.1.21~2.2) ― 『700M』의 결실

두 번째 답사는 13일에 걸친 문명 대장정이었다(이춘화·최금희·이유은 동행). 이스탄불(성소피아·톱카프·보스포러스),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에페소, 부르사를 거쳐 이집트의 룩소르·카이로(기자 피라미드)에 이르고, 다시 그리스 아테네로 건너가 1월 31일 델피를 재방문하였다.

델피를 다시 찾으며 1차에서 떠오른 개념이 무르익었다. 동·서 문명이 교차하는 거대한 동선 한가운데에서, ‘작은 길 하나가 어떻게 큰 이야기를 담는가’라는 700미터의 직관이 또렷해졌다. 이 답사의 결실로 저작 『700M: The Runway That Can Stop War』(최금희·이춘화·이유은)가 세상에 나왔다.

두 차례 델피 답사의 결론

중심은 거대함이 아니라 ‘멈춤’에서 생긴다. 세계의 배꼽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과 마주하는 모든 자리에 있다. 한국에도 그런 자리가 있다 ― 세종의 700미터다.

4. 제3차 · 미소국 (2025.4.14~4.25) ― 작은 나라의 인간척도

세 번째 답사는 10박 12일 일정으로, 공동연구자 최금희 외 5인이 동행하였다. 취리히에서 출발해 리히텐슈타인, 이탈리아 북부(꼬모·베로나·볼로냐·산마리노·라벤나·파르마), 남프랑스(니스·모나코·에즈·앙티브·생폴드방스·그라스), 프로방스(무스티에 생트마히·베르동 협곡·고르드·아비뇽·아를·카르카손), 안도라, 스페인(몬세라트·바르셀로나)을 거쳐 돌아왔다.

주제 ― 작은 나라가 사람을 어떻게 품는가

이 답사의 초점은 리히텐슈타인·산마리노·모나코·안도라 같은 ‘미소국(微小國)’이었다. 작은 나라들은 거대한 규모가 아니라 인간척도(human scale)로 사람을 품는다. 걸어서 닿는 거리,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크기 ― 이것이 700미터 길이 지향하는 ‘작아서 오히려 깊은’ 공간의 실증 사례였다.

서브 주제 ― ‘한국 여인은 무엇에 감동하는가’

동행한 5인은 본 프로젝트를 알지 못하는 50·60대 전문직 여성이었다. 의도를 모른 채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700미터 길이 일반 방문객에게도 통할 보편성을 지녔는지를 가늠하는 ‘살아 있는 시험’이었다. 결론적으로, 사람을 움직인 것은 웅장한 유적이 아니라 빛·거리·속도가 만들어 낸 ‘멈춤의 순간’이었다.

5. 제4차 · 이탈리아 (2026.5.12~5.22) ― 감각의 채집

네 번째 답사는 11일 일정으로, 3차와 동일한 동행(최금희 외 5인)이 함께하였다. 토스카나, 마테라, 아말피·포지타노를 중심으로, 이 답사의 목적은 ‘얼마나 많이 보는가’가 아니라 ‘빛과 거리와 감정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감각 채집의 원칙

이번 답사의 진짜 산출물

사진 1,000장이 아니라, 단 한 장의 ‘살아 있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이 가르쳐 준 한 문장 ―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비고 — 제4차 이탈리아의 세부 내용은 관련 저작 및 보고서에 녹여 제출한다.

6. 종합 ― 세종 700미터로의 귀결

네 차례의 답사는 각각 하나의 기능을 맡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세종 전의면의 700미터로 모인다.

답사 지역 배운 것 700미터로의 연결
1·2차 그리스 델피 중심은 멈춤에서 생긴다 개념(K-OMPHALOS)의 좌표
3차 유럽 미소국 작아서 오히려 깊다 인간척도의 실증
4차 이탈리아 빛·거리·감정의 채집 감각의 방법론
귀결 세종 700m 사랑나무→철길→시조묘소 실현의 땅

델피가 ‘왜’를 주었다면, 미소국은 ‘얼마나 작게’를, 이탈리아는 ‘어떻게 느끼게’를 주었다. 세종의 700미터는 그 셋을 한 자리에 구현한다.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소까지 왕복 약 1.4킬로미터, 한 사람의 한평생에 비길 수 있는 이 길은, 세계의 어떤 문화경관 길과도 같은 구조(지형 순응·의례 경로·세대 계승)를 지니면서, 가장 짧고 가장 인간적인 척도로 응축되어 있다.

7. 결론 및 제언

2026년 6월 18일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붙임 ― 차수별 일정 요약

제1차 (2022.9.9~9.16, 그리스)

수니온(포세이돈 신전) → 산토리니(이아·피라) → 델피(아폴론 신탁·옴팔로스) → 메테오라(수도원) → 테르모필레(레오니다스) → 아테네(아크로폴리스·신타그마 광장).

제2차 (2023.1.21~2.2, 이집트·그리스·튀르키예 / TK)

이스탄불(성소피아·톱카프·보스포러스) → 카파도키아(괴레메·데린쿠유) →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 → 에페소(켈수스 도서관) → 부르사 → 후루가다 → 룩소르(왕가의 계곡·카르낙) → 카이로(기자 피라미드·이집트박물관) → 아테네 → 델피(1/31) → 메테오라.

제3차 (2025.4.14~4.25, 미소국 / LX·LH)

취리히 → 리히텐슈타인 → 꼬모 → 시르미오네·베로나·볼로냐·산마리노·라벤나·파르마 → 니스·모나코·에즈·앙티브·생폴드방스·그라스 → 무스티에 생트마히·베르동 협곡·고르드·아비뇽·아를·카르카손 → 안도라 → 몬세라트·바르셀로나 → (프랑크푸르트 경유) 인천.

제4차 (2026.5.12~5.22, 이탈리아)

토스카나 → 마테라 → 아말피·포지타노. ‘빛과 거리와 감정의 채집’ 원칙에 따른 감각 답사. 세부 내용은 관련 저작 및 보고서에 녹여 제출한다.

제 3 부

세종시 유교문화권 700미터 문화경관

Policy Proposal to Sejong City

그 정신과 검증을 행정의 언어로 옮긴 정책 제안

문서번호 (작성 당시 문서번호: 화수본-SJ-2026-7-1-700m)
시 행 2026. 7. 1. (시장 취임일)
수 신 세종특별자치시장 (조상호)
경 유 문화체육관광국장 · 관계 부서장
발 신

건축사 이춘화 (작성 당시: 전의·예안이씨화수회본부 현창위원장)

제 목

「세종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기본계획(2015)」의

완성을 위한

시조 이도(李棹) 현창사업 및 이도심중매원 · 700m

역사문화길 조성에 관한 정책 건의

목 차

핵심 도식 ― 천 년을 잇는 한 가문의 윤리 3

1. 제안의 취지 4

2. 제안의 배경 ― 2015 기본계획이 세운 논리와 비워 둔 자리 5

3. 제안 내용 6

제1제안. 시조 이도 현창사업의 정책의제화 6

제2제안. 이도심중매원 ― 박물관단지·문화공동체 연결 6

제3제안. K-OMPHALOS 700m 문화경관 프로젝트 7

4. 추진 방안 ― 통합 4단계 추진체계 11

5. 기대 효과 12

6. 결어 12

붙임 ― 근거자료 13

붙임 1. 시조 이도 사적 / 붙임 2. 조선가훈 원문 / 붙임 3. 2015 기본계획 분석 13

붙임 4. RAUL 권리현황 / 붙임 5. 문화 콘텐츠 자산 및 세계화 기반 14

[ 핵심 도식 ] 천 년을 잇는 한 가문의 윤리

고 려 (高麗)

全忠孝護家門

충효를 온전히 하여 가문을 지킨다

▶

조 선 (朝鮮)

家傳忠孝世守仁敬

충효를 전하고 대대로 인·경을 지킨다

▶

현 재 (現在)

RAUL

오늘의 밥상에서 실천하는 윤리

文(글)에서 行(실천)으로 ― 고려 이래 1,000년, 이 가문은 ‘충효(忠孝)’ 두 글자를 한 번도 놓지 않았습니다.

위 도식은 본 건의의 정신적 척추입니다. 고려의 가훈 ‘全忠孝護家門’은 조선의 ‘家傳忠孝世守仁敬’으로 이어졌고, 오늘 ‘RAUL(밥상머리교육)’의 실천으로 되살아납니다. 글로 전해 온 천 년의 윤리를 사람이 걷고 앉고 함께 밥 먹으며 체험하는 장(場) ― 그것이 이도심중매원과 700m 역사문화길입니다.

1. 제안의 취지

먼저 세종특별자치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새로이 시정을 맡으신 시장님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본 회는 고려 개국공신이자 전의(全義)의 시조인 이도(李棹)의 후손 종친회로서, 18년 이상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원칙으로 가문의 역사 기록을 보존해 왔습니다. 본 건의는 종친회의 사적 현양을 청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귀 시(市)가 2015년에 이미 수립한 「세종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기본계획」이 비워 둔 한 자리를 채워, 그 계획을 본래의 취지대로 ‘완성’하시도록 돕는 데 뜻이 있습니다.

본 건의의 한 문장

세종시 유교문화권 개발의 핵심은 관광객 유치가 아니라, 사람과 역사와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는 ‘문화적 회복’에 있습니다.

2. 제안의 배경 ― 2015 기본계획이 세운 논리와 비워 둔 자리

「세종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기본계획」(2015. 11., 전 191면)은 단순한 지방 관광계획이 아니라, 스스로 그 목적을 “국가 차원의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 계획」에 제안·반영”하는 데 둔 ‘국가사업 제안서’였습니다. 동 계획은 다음의 견고한 논리를 세워 두었습니다.

▍ 비워 둔 자리

그러나 동 계획의 핵심인물 목록, 핵심문화유산 목록, 6대 개발사업, 성역화 사업 ― 그 어디에도 전의의 시조 이도는 없습니다.

이도는 오직 부록 연표에만 두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1578년 “전의 이씨의 시조 이도의 공적을 기리는 신도비와 묘소”, ② 1841년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의 유허비(이성산성 정상)”. 자료로는 남았으나, 사업으로는 한 번도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입지·벨트·사업유형·국가사업화 경로라는 네 개의 사다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정작 그 사다리에 ‘전의’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인물만 올라 있지 않습니다. 본 건의는 이 누락을 절차로 교정하기를 청합니다.

3. 제안 내용

제1제안. 시조 이도(李棹) 현창사업의 정책의제화

시조 이도는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할 때 5만 대군의 금강 도하를 도운 공으로 ‘도(棹·노)’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통합삼한삼중대광대사익찬공신(統合三韓三重大匡大師翊贊功臣)에 책록되어 전의후(全義侯)에 봉해진 인물로 전합니다. 그가 세거한 이성산성(李城山城)은 현재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운주산 북쪽에 소재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관 ‘전의(全義)’ 자체가 그로부터 비롯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정중히 여쭙고자 합니다. 귀 시는 이미 조선 세종조의 명신 김종서 장군을 112,225㎡ 규모의 성역화 사업으로 현창하고 계십니다. 충절의 인물을 국가·도시의 정신적 자산으로 삼는 그 뜻에 깊이 공감합니다. 다만 다음의 위격(位格)을 함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구분 절재 김종서 시조 이도
시대 조선 세종조 (15세기) 고려 개국기 (10세기)
위격 이미 선 나라를 섬긴 명신 나라를 연 개국공신
묘소·유적 묘(시도기념물 2호) 묘소·신도비(1578)·유허비(1841)·이성산성
현황 성역화 사업 추진(100대 과제) 부록 연표에만 기록 / 사업 미편입

조선의 한 명신도 국가 성역화의 대상이 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4세기 이상 앞서 나라를 연 개국공신이겠습니까. 이는 두 인물을 견주어 우열을 가리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이 땅이 품은 충절의 인물입니다. 다만 ‘조선의 명신이 넘은 정책의 문턱을, 고려를 연 개국공신은 당연히 넘는다’는 위격의 정합성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건의 — 김종서 성역화의 선례(2013년 종합정비기본계획 수립 → 성역화 사업 → 100대 과제 편입)에 준하여, 시조 이도 묘소권에 대한 현창 종합정비계획 수립과 시 정책과제 편입을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2제안. 이도심중매원(心中梅園) ― 박물관단지·문화공동체와의 연결

이도심중매원은 시조 묘소권을 현대 건축 언어로 번역한 ‘실천 정원’입니다. 이는 2015 기본계획이 세운 두 논리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특히 동 계획은 신도시 인구를 두고 “지역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구가 대부분”이며 “문화체험 수요가 높은 학생·학부모가 대거 유입”된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도심중매원의 전연령 밥상머리 체험(RAUL)은 이 약점과 수요에 동시에 응답합니다.

제3제안. K-OMPHALOS 700m 문화경관 프로젝트 ― 대한민국 문화경관 시범모델

▍ 사업의 정의

본 사업은 특정 가문의 묘역 정비사업이나 종중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통 공동체가 수백 년 동안 형성해 온 삶·기억·제례의 공간을 하나의 문화경관으로 보존·기록하는 국가적 시범모델이다.

문화재는 건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걷던 길, 조상을 기리던 공간, 마을의 숲, 공동체의 기억, 세대를 이어 온 이야기가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문화경관’이 완성됩니다. 우리나라는 궁궐·사찰·성곽의 보존에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온 ‘생활문화경관’의 기록과 보존은 아직 부족합니다. 전의면 일대는 이 요소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드문 사례이며, 따라서 생활유산 보존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최적지입니다.

700m 역사문화길(사랑나무 → 철길 → 시조묘소)은 이 문화경관의 중심 축이자, 행복도시 둘레길 167㎞ 계획과 경쟁하지 않는 ‘인간척도의 단위 경험’을 먼저 구현하는 시범 구간(프로토타입)입니다. 실제 구간은 다음의 세 마디로 구성되며, 왕복 약 1.4㎞입니다.

순서 경유지 시간층 구간의 의미
출발 사랑나무 (Tree of Love) 현재 만남 · 기다림 · 화합
중간 철길 건널목 근대 멈춤 · 기다림 · 이산과 연결
도착 전의이씨 시조 이도 묘소 고려 뿌리 · 현창 · 안식

문화경관 구성요소 — 시조 묘역 · 영사재 · 사랑나무 · 철길 건널목 · 주변 숲과 농경지. 이들은 개별 문화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경관 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 그림 ] K-OMPHALOS 700m 역사문화길 — 사랑나무에서 시조 이도 묘소까지의 실제 경로 (출처: 건축사 이춘화 작성)

귀 시는 이미 김종서 성역화 사업에서 “한다리마을 입구~김종서 묘 구간(1.7㎞) ‘장군의 길’ 체험시설”을 채택하셨습니다. 700m 역사문화길은 그보다 더 짧고 더 인간척도이며, 동일한 ‘묘소-스토리보드-체험’ 구조를 따릅니다. ‘장군의 길’이 승인된 논리 그대로 ‘시조의 길’을 적용하시면 됩니다. 새 사업 유형의 신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나무와 시조의 길 ― 한 사람의 인생에 부합하는 길

이 길의 출발점에는 한 그루의 ‘사랑나무’가 있습니다. 열일곱 살 소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알면서도, 북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방배동 집에서 시장을 오갈 때마다 물을 주며 키운 묘목입니다. 소녀는 그 나무를 돌봐 줄 사람을 찾아 건축가에게 맡겼고, 나무는 전의면 심중매원 영사재 입구에 옮겨 심어져 ‘사랑나무(Tree of Love)’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나무에서 시조 이도의 묘소에 이르는 700미터는, 한 사람의 한평생에 비길 수 있습니다. 삶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사랑나무), 멈춤과 기다림의 시간을 건너(철길 건널목), 마침내 뿌리로 돌아갑니다(시조 묘소). 그래서 이 길은 ‘시조의 길’이자 동시에 ‘인생의 길’입니다. 결정하기 전에 함께 700미터를 걷는다는 것은, 한 생애의 길이만큼 천천히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 멈출 수 있는 활주로 ―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

이 700미터는 남북으로 갈린 일가,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인, 그리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심정적(心情的) 한국인’까지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걷는 무대입니다.

사랑은 옮겨 심을 수 있고, 그리움은 생명을 이어 갑니다(Love can be transplanted; longing carries life forward). 심중매원의 사랑나무는 마침내 K-옴파로스(K-Omphalos) ― 인류가 잠시 멈추어 책임을 회복하는 세계의 배꼽 ― 가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의례 경관 ― 묘제의 본질은 ‘함께 걷는 것’

이 700미터가 문화경관인 까닭은, 그것이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해마다 사람이 걷는 ‘살아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면 온 일가가 이 길을 걸어 시조 묘소에 올라 추향제를 올립니다. 시조 묘제의 본질은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함께 걷고·함께 땀 흘리고·함께 이야기하고·함께 음식을 나누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길과 묘소와 제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문화경관을 이루는 드문 사례입니다.

세계 문화경관과의 비교 ― 700m 길의 보편적 가치

길(path)은 세계 문화경관의 핵심 요소입니다. 자연 지형을 따라 형성되고, 공동체의 의례와 결합하며, 수백 년의 기억이 축적된다는 점에서, 700m 역사문화길은 세계의 대표적 문화경관 길과 동일한 구조를 공유합니다.

사례 지역 성격 공통 구조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순례 · 공동체 기억 지형 순응 · 의례 경로
구마노 고도 일본 산악 순례 · 자연신앙 지형 순응 · 의례 경로
토스카나 농촌경관 이탈리아 생활 · 농경 공동체 생활 경로 · 세대 계승
몽생미셸 순례로 프랑스 해안–평야 순례 지형 순응 · 의례 경로
700m 공동체 길 대한민국 사랑나무→시조묘소 생활·제례 지형 순응 · 의례 · 세대 계승

이들 세계 문화경관과 700m 길의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직선이 아니라 지형을 따라 형성된 경로라는 점. 둘째, 순례·제례 등 공동체 의례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 셋째, 수백 년에서 천 년에 걸쳐 세대를 넘어 유지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특히 700m 길은 철도가 놓인 뒤에도 그 흐름이 끊기지 않고 현대 인프라와 전통 경로가 공존하는 구조를 보여, 비교 사례 중에서도 보기 드문 ‘근대와 전통의 공존’ 가치를 지닙니다.

이러한 비교는 700m 문화경관이 한 가문의 길을 넘어, 인류 보편의 ‘인생의 길’로서 UNESCO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논의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본 건의는 거창한 등재 목표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먼저 가치조사를 거쳐, 세종시 향토유산 등으로의 등록·지정을 검토하는 데서 단계적으로 시작하기를 청합니다.

4. 추진 방안 ― 통합 4단계 추진체계

본 건의는 한 번의 결정을 청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추진을 청합니다. 아래 표는 문화경관의 기록·보존 작업과 정책의제화의 경로를 하나의 4단계로 통합한 것입니다.

단계 문화경관 작업 정책 경로 / 선례
1단계 기록·시범 실측·드론 촬영·구술사·제례 기록, 700m 길 시범 조성 ‘장군의 길’ 유형 동등 적용
2단계 아카이브·현창 3D 데이터·다국어 콘텐츠·온라인 플랫폼, 시조 묘소권 종합정비계획 수립 김종서 2013 종합정비계획 선례
3단계 참여·의제화 문화경관 걷기·청소년 역사교육·해설 프로그램, 시 정책과제(100대 과제) 편입 ‘장기과제 74번’ 전례
4단계 국가시범·세계화 국가유산청·문체부 협력 국가 시범사업, 광역·UNESCO 문화경관 등재 동 2015 계획 본래의 목적

각 단계는 모두 귀 시가 이미 승인한 논리와 선례 위에 서 있어, 새로운 정책적 결단을 최소화합니다. 1단계의 가시적 성과가 2단계의 근거가 되고, 2단계가 3단계의 명분이 되며, 3단계가 4단계의 실적이 됩니다. 이로써 한 가문의 작은 길 하나가 대한민국 생활유산 보존의 시범모델로, 나아가 한반도와 세계가 공감하는 평화·공동체의 문화유산으로 확장됩니다.

5. 기대 효과

6. 결어

2015 기본계획은 관광을 표제로 내걸었으나, 그 행간이 반복해 말한 것은 ‘연결’이었습니다. 흩어진 자원의 연결, 4개 시도의 연결, 신도시 주민과 옛 땅의 연결, 그리고 ‘문화공동체적 유대감’의 회복입니다. 700m 역사문화길은 그 연결을 사람이 한 호흡에 걸을 수 있는 척도로 응축하고, 이도심중매원은 그 연결이 실천으로 일어나는 무대가 되며, 시조 이도의 현창은 그 모든 연결이 출발하는 ‘뿌리’를 세우는 일입니다.

시장님의 깊은 헤아림과 적극적인 검토를 정중히 청합니다.

2026년 6월 18일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붙임 ― 근거자료

붙임 1. 시조 이도(李棹) 사적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및 향토 기록에 따르면, 시조 이도의 본명은 치(齒)로 금강 어귀에서 뱃사공을 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 정벌 중 홍수로 금강을 건너지 못하자, 치 등이 선박 수백 척을 동원하여 5만 대군을 건너게 하였다. 왕건은 그 공으로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통합삼한삼중대광대사익찬공신에 책록하여 전의후(全義侯)에 봉하였다. 이후 일족이 이성산(李城山) 아래에 세거하여 본관을 전의로 삼았다. 7세손 이천(李仟)이 고려 고종 때 장군으로 현달하였고, 그 손자이자 자원(子)의 아들인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은 충렬·충선·충숙·충혜 네 왕을 섬긴 명신이다.

출전 — 『조선씨족통보』, 『신증동국여지승람』(이성산성 항), 세계일보 「한국의 성씨 이야기 — 전의이씨」(2012. 1. 24.). 이성산성은 지방문화재로 지정.

붙임 2. 조선가훈(祖先家訓) 원문 ― 全忠孝護家門의 출전

아래는 8세 문장공(諱 混, 이혼)이 조카 문의공(諱 彦冲, 이언충)에게 보낸 시문으로, 갑술 만력보(1574) 이후 족보 수보 때마다 실어 후손의 실천 교훈으로 삼아 온 가훈이다.

祖 先 家 訓

汝翁雖早逝 여옹수조서 너의 부친 비록 일찍이 돌아갔으나

汝叔幸今存 여숙행금존 다행히 너의 숙부는 아직 살아 있도다

恩愛何曾異 은애하증이 은의와 애정에 어찌 다름이 있으랴

親疎且莫論 친소차막론 멀고 가까움을 또한 말하지 말라

立揚期顯達 입양기현달 입신양명으로 반드시 현달하여

敦信護家門 돈신호가문 돈목과 신의로 가문을 수호하라

所冀全忠孝 소기전충효 바라건대 충효를 온전히 하여

佳聲揭後昆 가성게후곤 아름다운 명성을 후대에 드높이라

출전 — 『全義李氏副正公派譜』 第一卷, 3면. ‘全忠孝(전충효)’와 ‘護家門(호가문)’을 이어 본 건의의 가문 강령 ‘全忠孝護家門’이 성립한다. ‘全’은 ‘온전히(完)’이자 본관 ‘全義’의 全으로 이중 독해된다.

붙임 3. 「세종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기본계획(2015)」 전략 재구성 분석

본 건의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별도의 분석보고서(전 14면)를 함께 제출한다. 동 보고서는 2015 기본계획의 입지·광역연계·둘레길·박물관단지·김종서 성역화·브랜드 논리를 항목별로 분석하여, 시조 이도 현창·이도심중매원·700m 역사문화길과의 연결 근거를 상세히 제시한다.

붙임 4. RAUL 권리현황

본 건의에서 ‘현재의 실천’으로 제시한 RAUL 밥상머리교육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등록된 상표를 기반으로 한 실재하는 사업이다.

RAUL은 본 회의 가훈(全忠孝護家門·家傳忠孝世守仁敬)이 담은 충효·인경의 윤리를, 오늘의 밥상과 교육 현장으로 옮겨 실천하는 협력 사업이다. 권리자와의 협력 아래 이도심중매원·700m 역사문화길의 전연령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붙임 5. 문화 콘텐츠 자산 및 세계화 기반

700m 역사문화길과 사랑나무 서사는 이미 다음의 저작·연구로 정리되어, 세계화와 UNESCO 문화경관 등재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RAUL 상표권자이자 조선대학교에서 패션·문화를 10년 넘게 강의한 협력 연구자가 700m 역사문화길 조성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마지막 여정으로 이탈리아 길 탐방을 더하면, 이 길은 인류 보편의 ‘인생의 길’로서 UNESCO 세계 문화유산(문화경관) 등재까지 내다볼 수 있다.

붙임 ― 프로젝트 참여자 명부

아래는 「K-OMPHALOS 700미터 문화경관 프로젝트」에 자문·연구·협력으로 참여하시는 각 분야 전문가의 명부입니다. 해당 칸을 직접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프로젝트명 : K-OMPHALOS 700미터 문화경관 프로젝트

주 관 :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작 성 일 : 2026 년 06 월 18 일

연번 성 명 연락처 소속 · 직위 전문분야 기타
1 조○○ 비공개 ㈜강화리조트 대표

사업기획

PM

건국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디벨로퍼 경력 45년

2 호○○ 비공개 솔연모세㈜ 대표 사업총괄

성균관대 전기공학과

미세조류배양

3 황○○ 비공개

전)인천세계도시엑스포

총감독

기획,연출,예술감독 부산APEC미술감독,금산세계인삼엑스포총감독,인천세계도시축전총연출
4 신○○ 비공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박사 치유/명상

교수/이학박사

한국스포츠생명과학연구소장

산학협력본부장

5 김○○ 비공개 글로벌 말생태연구소 / 박사 승마/생태축산 독일 수의학박사
6 박○○ 비공개 드림이앤디㈜ 도시계획 부문 사장 도시계획 - 기술사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7 송○○ 비공개 도시공간 대표 도시계획 - 특급기술자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8 조○○ 비공개 ㈜동보토목 대표 토목설계 - 도로및공항기술사 서울산업대 대학원
9 신○○ 비공개 ㈜그리심 E&G 대표 측량/토목설계 - 특급기술자 한국농어촌공사 근무
10 전○○ 비공개 ㈜아람그룹 대표 토목설계 - 특급기술자 함양 리조트 294만평 설계
11 유○○ 비공개 바움건축사 사무소 대표 조경설계 - 건축사 건국대 건축학과
12 함○○ 비공개 ㈜비스플랜 건축사 사무소 대표 건축설계 - 건축사 이태리 밀라노 공과대학
13 이○○ 비공개 (주)휘츠플래너건축사 사무소 대표 건축설계 - 건축사 건축기획 / 플래너
14 최○○ 비공개 (사)원극공 한국선도 금선문화원 원장 자연치유/선도 포항 태양광발전 대표
15 김○○ 비공개 전, 유성엔지니어링 도시계획 사장 재해영향평가 - 특급기술자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16 조○○ 비공개 ㈜존테크놀리지 대표/전기공학박사수료 특급, 기능장, 기술지도사(기술혁신관리) 한국공학대 전기 에너지공학
17 조○○ 비공개 ㈜스마트팜센터 대표 스마트팜통합운영관리시스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2025)

농림식품부장관상(2024)

18 이○○ 비공개 이김코리아㈜ 회장 대관업무 전,민주당보좌관협의회 회장

※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 — 본 명부에 기재된 개인정보(성명·소속·연락처 등)는 「K-OMPHALOS 700미터 문화경관 프로젝트」의 운영·연락 목적으로만 수집·이용되며, 목적 달성 후 파기됩니다. 기재 및 서명으로 위 수집·이용에 동의하신 것으로 봅니다.

비고 — 참여 역할 예시: 총괄·자문위원·연구위원·현장조사·기록·번역·교육·홍보 등. 칸이 부족할 경우 별지를 추가하여 주십시오.

제 4 부

금강 이도길(李棹길) 마스터플랜

노를 받은 강에서, 다시 노를 젓다

공주 신관동에서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까지 — 금강으로 잇는 고려 외교력 체험

Lee Do's River Road — From the Geum Estuary to the Founding Ancestor's Resting Place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목 차

서문 ― 한 물길에 담긴 천 년

1. 비전 ― 노(棹)를 받은 강에서, 다시 노를 젓는다

2. 한 물길, 두 방향 ― 세계로(고려 외교력)와 뿌리로(시조 안식처)

3. 길의 구조 ― 백제에서 고려로, 그리고 오늘로

4. 고려 외교력의 재현 ― 금강·벽란도·아라비아

5. 출항지로서의 신관동 ― 생활농업 부지와의 접속

6. 단계적 추진 ―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7. 세계인을 위한 고려 외교력 체험 모형

8. 결어

서문 ― 한 물길에 담긴 천 년

이 마스터플랜은 한 줄기 강을 이야기한다. 충청남도 공주 신관동의 금강변에서 출발하여, 물길을 거슬러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에 이르는 길이다. 거리로는 한나절이지만, 그 안에는 천 년의 시간이 흐른다.

강의 남안에는 백제의 도읍 공산성이 있고, 북안에는 오늘의 사람들이 흙을 가꾸는 생활농업의 땅과 금강 선착장이 있다. 그 선착장에서 고려 배를 띄우면, 금강은 다시 서해로, 벽란도로, 그리고 아라비아 상인의 바다로 이어진다. 같은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그 끝에 세종 전의면 ― 고려를 연 시조 이도(李棹)의 안식처, 이도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 ― 이 있다.

그러므로 이 길은 단순한 관광 코스가 아니다. 백제에서 고려로, 다시 오늘로 이어지는 시간의 길이며, 한 물길 위에 ‘세계로 나아간 힘’과 ‘뿌리로 돌아가는 마음’이 함께 흐르는 길이다. 본 마스터플랜은 그 길의 정신과 구조, 그리고 단계적 실현 방안을 담는다.

1. 비전 ― 노(棹)를 받은 강에서, 다시 노를 젓는다

이 길의 정신적 척추는 시조의 이름 그 자체에 있다.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는 본래 금강 어귀의 뱃사공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던 중 홍수로 금강을 건너지 못하자, 그가 선박 수백 척을 모아 5만 대군을 건너게 하였고, 그 공으로 ‘도(棹·노)’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전의후(全義侯)에 봉해졌다. 이 가문 천 년 서사의 출발점이 곧 ‘배·노·물길’인 것이다.

따라서 신관동 금강변에서 고려 배를 띄우는 일은 관광을 위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건국의 그 장면을 다시 띄우는 일이며, 한 사람이 강 위에서 자기 뿌리와 마주하는 일이다. 노를 받은 사람의 강에서, 후손과 세계인이 다시 노를 젓는다 ― 이것이 금강 이도길의 한 줄 선언이다.

비전 한 줄

노(棹)를 받은 강에서, 다시 노를 젓는다.

On the river that gave him the name of the oar, we take up the oar again.

2. 한 물길, 두 방향 ― 세계로와 뿌리로

금강은 두 방향으로 동시에 흐른다. 하나는 강을 따라 내려가 서해와 벽란도, 아라비아로 이어지는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는 고려가 지녔던 개방성과 외교력, 그리고 세계적 위상을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시조의 안식처에 닿는 ‘뿌리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는 한 사람이 자기 근원과 가족, 공동체로 회귀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신관동 출항지는 단순한 시작점이 아니라, ‘세상으로’와 ‘뿌리로’가 갈라지고 또 만나는 결절점이 된다. 세계로 나아가는 힘이 결국 뿌리에서 나오고, 뿌리로 돌아가는 마음이 다시 세계를 향한 용기가 된다는 것 ― 이 길이 전하는 가장 인간적인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3. 길의 구조 ― 백제에서 고려로, 그리고 오늘로

이 길은 강을 축으로 세 시간층과 세 장소가 겹쳐지는 ‘살아 있는 문화경관’이다. 백제의 공산성, 오늘의 생활농업과 출항지, 고려 시조의 안식처가 하나의 물길로 꿰어진다.

구간 위치 시간층 의미
마주 봄 공산성 (금강 남안) 백제 도읍의 기억 ― 강을 사이에 둔 역사의 마주 봄
출항

신관동 생활농업 부지

금강 선착장 (북안 출발지)

현재 오늘의 실천(생활농업·RAUL)이 길을 여는 집결·출항지
물길 금강 (황포돛배 체험 구간) 고려 노를 받은 시조의 길 ― 세계로 나아간 외교의 물길
귀결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 (시조 이도 안식처·700m 문화경관) 고려 뿌리·현창·안식 ― 한 생애와 한 가문이 돌아가는 자리

이 구조는 앞서 정리된 ‘고려 → 조선 → 현재(RAUL)’의 윤리 축, 그리고 세종 이도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의 ‘사랑나무 → 철길 → 시조 안식처’ 구조와 같은 원리를 공유한다. 공주의 길과 세종의 길은 금강이라는 한 물줄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4. 고려 외교력의 재현 ― 금강·벽란도·아라비아

고려는 벽란도라는 국제 무역항을 통해 송·일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 상인과도 교역하였고, ‘코리아(Corea)’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것도 이 시기다. 강과 포구를 통한 개방·교류·외교가 곧 고려의 세계적 위상을 만든 힘이었다. 금강 또한 내륙과 서해를 잇는 물류·외교의 길이었으며, 시조 이도의 배는 그 물길 위에서 역사를 바꾸었다.

이 추상적 역사를 ‘몸으로 걷고 타는’ 체험으로 옮기는 장치가 황포돛배다. 이미 나주 영산강에서 황포돛배가 운항되어, 강 전 구간을 항행하지 않고도 정해진 구간의 체험·시연만으로 충분히 성립함을 보여 주었다. 영산포가 내륙 포구 문화의 복원 사례이듯, 신관동 선착장은 금강 포구 문화와 고려 외교 서사를 결합한 체험 거점이 될 수 있다. 항행의 부담 없이, 출항지 일대의 구간형 체험으로 설계한다.

체험의 핵심

관람이 아니라 승선이다. 보는 역사가 아니라, 노를 잡는 역사다.

5. 출항지로서의 신관동 ― 생활농업 부지와의 접속

이 마스터플랜은 별도로 추진 중인 「공주시 신관동 생활농업 R&D 실증모델」과 경쟁하지 않는다. 두 사업은 역할이 다른 두 층(層)으로 맞물린다. 생활농업 기획서는 농지의 적법 정비·실경작·세대 공동체라는 차분한 토대를 담당하고, 본 마스터플랜은 그 토대 위에 ‘출항지로서의 의미’라는 상위 서사를 얹는다.

구체적으로 생활농업 부지는 다음의 기능을 통해 이도길의 첫 마디가 된다. 공동체 테이블은 출항 전후의 집결·환대·공동 식사 공간이 되고, 걷는 길·들판은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도입 동선이 되며, 생활문화 데이터 구역은 답사·승선·제례의 기록을 축적하는 아카이브가 된다. 이렇게 하면 농업 기획서는 행정·농지 심사용 신뢰도를 그대로 지키면서, 더 큰 문화경관의 출발점이라는 위상까지 얻는다.

권고 ― 생활농업 기획서 본문은 현 상태를 유지하되, 향후 ‘본 부지는 금강 출항지로서의 잠재력을 지닌다’는 한 문장 수준의 연결 고리만 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계 관광 비전은 본 마스터플랜이 담당한다.

6. 단계적 추진 ―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본 사업은 한 번의 큰 결단이 아니라, 가시적 성과가 다음 단계의 명분이 되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의 단계적 추진을 따른다. 이는 세종 심중매원 정책 건의의 4단계 추진체계와 동일한 논리 위에 선다.

단계 핵심 과제 산출 · 연계

1단계

출항지 정비

신관동 선착장·집결·환대 기능 정비, 생활농업 부지와의 동선 접속, 출발 거점 조성 ‘이도길의 첫 마디’ 물리적 기반 / 생활농업 R&D와 연계

2단계

승선 체험

황포돛배(고려 배) 구간형 운항·시연, 출항 의례 콘텐츠 설계 (나주 영산강 선례 적용) ‘승선하는 역사’ 체험 프로그램 / 포구 문화경관 형성

3단계

물길 연결

공주(출항)–세종 심중매원(귀결) 서사·동선 연결, 700m 길과의 통합 해설·교육 프로그램 두 도시를 잇는 광역 문화경관 축 / 향토유산 가치조사

4단계

세계화

세계인 대상 고려 외교력 체험 모형 운영, 다국어 콘텐츠, 국가유산·문화경관 협력 ‘인생의 길’로서의 국제 콘텐츠 / UNESCO 문화경관 논의 기반

7. 세계인을 위한 고려 외교력 체험 모형

최종 단계에서 이 길은 세계인을 위한 체험 모형으로 확장된다. 방문객은 신관동 출항지에서 공동 식사로 환대받고, 고려 배에 올라 노를 잡으며, 강 위에서 ‘세계로 나아간 고려’와 ‘뿌리로 돌아가는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다. 강을 거슬러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에 이르러서는, 시조의 안식처와 700m 문화경관을 걸으며 한 생애의 길을 완성한다.

이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심정적(心情的)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이 모두 주인공이 되는 무대다. 웅장한 규모가 아니라, 노를 잡고 강을 건너는 인간척도의 체험으로 고려의 개방성과 외교력을 몸에 새기게 한다. 관광은 이 문화적 깊이가 갖추어질 때 그 결과로서 자연히 따라온다.

8. 결어

금강 이도길은 한 가문의 길을 넘어선다. 백제의 도읍을 마주 보는 자리에서, 노를 받은 시조의 강 위에서,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노를 잡고 뿌리와 세계를 동시에 향한다. 작은 출항지 하나가 두 도시(공주·세종)를 잇고, 한 물길이 천 년의 시간을 잇는다.

본 마스터플랜은 그 길의 첫 골격이다. 생활농업의 땅을 출항지로, 금강을 길로,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을 귀결로 삼아, ‘함께 걷고 함께 타고 함께 밥 먹는’ 가장 인간적인 문화경관을 단계적으로 실현하고자 한다.

노를 받은 강에서, 다시 노를 젓는다.

공주 신관동에서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까지 ― 금강으로 잇는 한 사람의 길, 한 나라의 길.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제 5 부

금 강 의 기 적

세종·공주·대전을 잇는 정신문화 권역 보고서

한강의 기적에서 금강의 기적으로 — 棹·촉·동심·단금으로 다시 잇는 한반도의 길

위대한 고려에서, 위대한 한국으로

사람을 다시 잇는 통공(通共)의 100길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보고 개요

제목 금강의 기적 ― 세종·공주·대전을 잇는 정신문화 권역 보고서
수신 세종특별자치시장 (협조: 공주시장 · 대전광역시장)
핵심 메시지 한강이 ‘산업의 기적’이었다면, 금강은 ‘정신의 기적’이다. 기술의 대전·정치의 세종·정신의 공주가 한 물길로 마음을 합할 때(三市同心), 한반도의 다음 기적이 금강에서 시작된다.
권역 범위 금강 본류·지류 권역 — 대전(갑천) · 세종(본류·전의면 이도 심중매원) · 공주(공산성·신관동 출항지)
발신 건축사 이춘화 (작성 당시: 전의·예안이씨화수회본부 현창위원장)

1. 왜 금강인가 ― 산업의 기적 다음, 정신의 기적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폐허 위에서 한 세대 만에 세계가 놀란 산업화를 일구었고, 그 기적은 ‘물질’과 ‘기술’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연결된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장 멀어졌고, 외로움은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한 시대의 병이 되었다. 우리가 다음으로 이루어야 할 기적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잃어버린 ‘정신’과 ‘관계’의 회복이다.

그 기적이 일어날 강은 금강이다. 금강은 백제의 도읍을 품었고, 고려를 연 시조 이도(李棹)의 강이며, 오늘은 대전·세종·공주를 하나로 꿰는 충청의 물줄기다. 한강이 산업의 기적을 실어 날랐듯, 금강은 정신의 기적을 흐르게 할 수 있다. 본 보고서는 이를 ‘금강의 기적’으로 명명하고, 세종을 그 중심으로 제안한다.

세계를 이끄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다.

한강의 기적이 물질을 세웠다면, 금강의 기적은 사람을 다시 잇는다.

2. 세 도시, 한 물길 ― 三市同心

『주역』은 이른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는다(二人同心 其利斷金).” 금강 권역의 세 도시는 각기 다른 힘을 지녔다. 대전은 기술을, 세종은 정치를, 공주는 정신을 맡는다. 이 셋이 한 물길 위에서 마음을 합할 때(三市同心), 어느 도시 혼자서는 끊지 못할 시대의 과제를 함께 끊어낼 수 있다.

도시 금강과의 관계 맡은 힘 정신문화 자산
대전 갑천 → 금강 상류 권역 기술(技)·과학 대덕의 지성 — 미래를 여는 도구와 두뇌
세종 금강 본류 관통 정치(政)·행정 국가 의사결정의 자리 · 시조 이도 안식처(전의면 심중매원) — 정치를 양심으로
공주 금강 중류 · 공산성 · 신관동 출항지 정신(精神)·역사 백제 도읍 공산성 · 금강 이도길 출발지(신관동) · 생활농업

기술만으로는 방향을 알 수 없고, 정치만으로는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정신만으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세 힘이 금강에서 동심을 이룰 때 비로소 ‘단금(斷金)’ ― 시대를 끊어 새 길을 내는 일 ― 이 가능해진다.

3. 금강의 정신 ― 세 사람의 동심(三人同心)

[ 본 서사에 관하여 ]

이하 왕건·이도·부부인 진천 홍씨의 촉 이야기는 정사(正史)의 기록이 아니라, 전의이씨 문중에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지고 여인들의 촉으로 이어져 온 정신문화의 서사다.

부부인 진천 홍씨가 시조 이도의 배위(配位)인 것은 사실이나, 그 촉이 왕건의 생환을 이끌었다는 인연은 구전에 따른 것이다.

본 보고서는 이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으며, 한 권역이 함께 나눌 ‘정신의 자산’으로서 제시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 겨루던 시절, 금강 일대에서 두 번이나 사로잡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한다. 견훤 측은 ‘왕건을 사로잡아 바치면 큰 상을 내리겠다’며 주변을 거듭 압박하였다. 그러나 시조 이도는 그 포상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사로잡힌 왕건을 두 번 다 풀어주었다. 적장을 베지 않고 살려 보낸 그 결단이, 훗날 고려를 여는 길이 되었다.

이 결단 뒤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이도의 부인, 부부인 진천 홍씨다. 눈앞의 상과 안전을 버리고 적을 살려 보내는 일 ― 손해처럼 보이는 그 선택이 훗날 무엇이 되는지를 꿰뚫어 본 부인의 촉(觸)이, 이도의 풀어줌과 함께 작용했다고 전한다. 이도의 결행(棹)이 왕건의 목숨을 건넸다면, 부인의 촉(觸)은 그 결행의 방향을 잡았고, 그 두 건넘을 받아 왕건(行)이 나라를 열었다. 정사가 군주와 신하 사이에만 둔 ‘쇠를 끊는 마음(二人同心)’을, 이 서사는 한 부인을 더해 세 마음의 합(三人同心)으로 넓힌다.

사람 한 글자 한 일 의미
이도 棹 (건넘) 사로잡힌 왕건을 두 번 다 풀어주다 결행 — 적을 살린 마음
진천 홍씨 觸 (꿰뚫음) 포상·압박 속에서 ‘살려 보내라’를 꿰뚫다 통찰 — 부인의 촉
왕건 行 (이룸) 두 번 살아 돌아가 고려를 열다 나라의 탄생 — 받는 자의 결행

세 마음이 하나로 합하여(三人同心) 비로소 쇠도 끊는 일(其利斷金)이 이루어졌다. 적을 살린 결행(棹)·그 방향을 꿰뚫은 통찰(觸)·받아 일어선 이룸(行)이 합한 이 동심이 금강의 정신이며, 본 권역 구상의 척추다.

과거의 三人同心 ↔︎ 현재의 三市同心

옛날 세 사람(이도·진천 홍씨·왕건)이 마음을 합해 고려를 열었듯,

오늘 세 도시(대전·세종·공주)가 마음을 합해 금강의 기적을 연다.

4. 세종의 자리 ― 정치의 중심에서 양심의 중심으로

세종은 국가 의사결정이 모이는 행정의 중심이다. 그러나 정치의 중심이 곧 양심의 중심이 될 때, 도시는 비로소 ‘동심’의 자리가 된다. 세종 전의면에는 고려 시조 이도의 안식처인 이도 심중매원과 700m 문화경관이 있어, 정치의 도시 한가운데에 ‘뿌리와 윤리’의 자리를 품고 있다.

본 보고서는 세종이 금강 권역의 ‘동심의 허브’가 되기를 제안한다. 결정의 도시가 양심의 도시로, 빠른 도시가 멈추어 마주 앉는 도시로 전환될 때, 금강의 기적은 그 중심을 얻는다. 윤리·양심을 의제로 삼는 권역 포럼을 세종에서 여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5. 공주의 자리 ― 백제·고려, 그리고 금강 이도길의 출항지

공주는 백제의 도읍 공산성을 품은 역사의 도시이자, 고려 시조 이도의 강이 시작되는 정신의 출항지다. 금강 남안에 공산성(백제)이 있고, 맞은편 북안 신관동에는 오늘의 생활농업 부지와 금강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고려 배(황포돛배)를 띄워 금강을 거슬러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에 이르는 ‘금강 이도길’이, 권역을 잇는 정신문화의 동선이 된다.

공주의 생활농업 부지는 출항 전후의 집결·환대·공동 식사 공간으로서 길의 첫 마디가 되고, 공산성과 마주 보며 백제에서 고려로, 다시 오늘로 이어지는 시간을 한자리에 모은다. ‘함께 걷고, 함께 타고, 함께 밥 먹는’ 인간척도의 체험이 여기서 출발한다.

[ 지도 ] 공주 신관동 — 금강 이도길 출발지

6. 대전의 자리 ― 기술의 도시에 정신을 더하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두뇌다. 그러나 기술은 방향을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기술을 쓸 것인가 ―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정신이다. 금강 권역에서 대전은 ‘기술’을, 공주는 ‘정신’을 맡아, 도구와 방향이 한 물길에서 만난다.

AI 시대의 기술이 ‘지구를 생각하는’ 방향을 얻고, 데이터와 기록이 정신문화의 보존에 쓰일 때, 대전의 기술은 금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손과 도구가 된다. 기술의 대전과 정신의 공주를, 정치의 세종이 잇는다.

7. 금강 100길 ― 세 도시를 잇는 정신문화 축

금강 100길은 대전·세종·공주를 하나로 꿰는 정신문화의 길이다. 그것은 거리의 길이 아니라, 기억에서 기도로, 기도에서 촉으로, 촉에서 기적으로 이어지는 내적 변화의 흐름을 땅 위에 옮긴 길이다. 공주 신관동에서 출항하여 금강을 따라 세종 전의면 이도 심중매원에 이르고, 그 흐름이 대전의 지성과 만나 권역 전체로 확장된다.

이 길 위에서 고려 여인 복식 체험(‘촉을 입다’), 도시별 명상·기도문, 밥상머리 교육(전의·예안이씨 가문 교육의 회복), 이도 상징 콘텐츠 등 정신문화 체험이 운영된다. 길과 강과 도시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살아 있는 문화경관을 이루는, 보기 드문 권역 모델이다.

8. 추진 구상 ―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본 보고서는 한 번의 큰 결단이 아니라, 가시적 성과가 다음 단계의 명분이 되는 단계적 추진을 제안한다. 각 단계는 세 도시의 기존 자원과 정책 위에 서며, 새로운 결단을 최소화한다.

단계 핵심 과제 권역 연계

1단계

정신의 출항

공주 신관동 출항지 정비, 금강 이도길 시범 구간(황포돛배 체험) 조성 공주 — 생활농업·문화경관과 연계

2단계

양심의 중심

세종 윤리·양심 권역 포럼 개설, 이도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 통합 해설·교육 세종 — 정치 중심을 양심 중심으로

3단계

기술의 결합

대전 연구·기록·데이터 협력, 다국어·디지털 정신문화 콘텐츠 구축 대전 — 기술이 정신을 돕다

4단계

금강의 기적

세 도시 100길 정신문화 축 완성, 세계인 대상 문화외교·‘한류 2.0’ 콘텐츠 권역 — 정신문화의 세계화

9. 결어 ― 다시 길을 낼 시간

금강의 기적은 더 높은 건물이나 더 빠른 기술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강에서 사람을 건지고(棹), 마음을 꿰뚫어 일으키며(촉), 마음을 합하여(동심), 시대를 끊어 새 길을 내는(단금) 일에서 온다. 기술의 대전, 정치의 세종, 정신의 공주가 한 물길에서 마음을 합할 때, 한반도의 다음 기적은 금강에서 시작된다.

정사가 군신에게만 허락한 ‘쇠를 끊는 마음’을, 우리는 부부인 진천 홍씨의 촉에서 되찾는다. 고려를 살린 것이 적을 살린 결행과 그 방향을 꿰뚫은 부인의 촉이었듯, 한국의 미래를 여는 것 또한 기술과 정신이 합한 동심일 것이다. 금강 100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한 권역이 함께 내딛는 회복의 선언이다.

다시 길을 낼 시간이다.

그 길은 기도로 시작되고, 촉으로 이어지며, 동심에서 천운을 깨운다.

위대한 고려에서, 위대한 한국으로 ― 금강의 기적.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제 6 부

걸어라, 그 다음에 결정하라

판단 이전의 구조 ― 대통령 제안서

영암고 기숙사가 묻는 것 · 700미터의 멈춤 · 비극에서 참여로

걸어라. 그 다음에 결정하라.

그리고 책임질 수 없다면, 다시 걸어라.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제0장. 판단 이전의 붕괴 ― 영암고 기숙사가 묻는 것

[ 본 장에 관하여 ]

본 장은 특정인의 책임을 단정하지 않는다. 무너진 것은 건물이 아니라, 검증을 요구받고도 응답하지 않은 ‘판단 구조’임을 사실에 근거해 기록한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이전이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판단을 멈추고 다시 묻는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암고 기숙사 사안은 그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사안의 핵심은 ‘건물이 무너졌다’가 아니다. 검증을 요구받은 국가가 데이터로 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① 준공 뒤인 2010년 8월, 교육청이 의뢰한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는 이 기숙사의 구조체가 안전율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실험적 성능평가 뒤 보강방안을 정하라고 했다. 광주지방법원은 2011년 2월 23일 판결(2009가단80496)에서 하나의 현장에 수 개의 구조계산서가 존재한 특이한 상황을 인정했다.
② 그럼에도 이후, 설계 검토보다 더 많은 데이터와 더 까다로운 검증을 요구하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③ 이에 ‘설계 때 불안정했던 구조가 어떻게 더 엄격한 진단을 통과했는가 ― 특히 국내 내진 권위자의 특허 부분에 대한 실험 데이터 요구가 충족되었는가’를 공개해 달라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④ 그러나 그 데이터의 충족 여부에 대한 구체적 답변은 제시되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 없이 공람 후 종결하였고, 교육청은 ‘수사 중’을 이유로 답변을 보류하였으며, 종결 이후에도 구체적 답변은 회피되었다. 그 뒤 2026년 8월 7일, 교육청은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다”고 회신했다.

위험은 데이터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 데이터에 데이터로 답하지 않았다. 책임을 묻는 통로는 차례로 닫혔다. 이것이 ‘판단 이전의 붕괴’다. 무너진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멈추고 다시 묻고 응답하는 국가의 판단 구조 그 자체다.

왜 아무도 멈추지 않았는가. 왜 누구도 ‘다시 보자’고 말하지 않았는가. 속도가 판단을 앞질렀고, 책임은 분산되었으며, 검증 요구는 응답되지 않았다. 이 구조는 교육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행정에서도, 국제 관계에서도, 전쟁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전쟁 또한 누군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멈추지 못해서 시작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어떤 기관의 권위도 학생의 생명과 바꿀 수 없다.

이 장은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억을 위한 것이며, 같은 구조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좋은 결정이 아니라, 결정을 늦출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의 윤리는, 천 년 전 한 가문이 이미 몸으로 보여 준 적이 있다.

보론. 천 년 전의 모범 ― 7세 이천 장군과 家責先行

[ 본 장에 관하여 ]

이하 7세 이천 장군과 장자(대사성공)의 이야기는 정사의 단정적 기록이 아니라, 전의이씨 문중에 전해 오는 현창(顯彰)의 서사다. 본서는 이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으며, 한 가문이 기억해 온 ‘책임의 윤리’로서 제시한다. (7세손 이천이 고려 고종 때 무장으로 현달한 것은 가문 기록에 따른다.)

고려가 몽골과 겨루던 시절, 시조 이도의 7세손 이천(李阡)은 권세와 지위를 가진 무장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장자(대사성공)를 안전한 자리에 두거나 후방으로 물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자를 가장 앞선 전선에 세웠다고 전한다.

이 장면이 가문에 남긴 것은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하나의 윤리다. 장자를 특권으로 보호하지 않고, 책임과 희생의 상징으로 세운 것. 집안의 화목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논리가 아니라, 가문의 책임이 먼저 간다는 ‘가책선행(家責先行)’의 철학이다.

장자가 가장 앞에 섬으로써, 가문과 종중은 오히려 윤리적·정신적 결속을 더 깊이 다졌다고 전한다. 그리고 후손에게 하나의 상징을 남겼다 ― ‘장자는 희생으로 공동체를 지킨다.’ 가장 보호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을, 가장 위험한 자리에 먼저 세운다는 것. 그것이 이 가문이 천 년 동안 기억해 온 책임의 형식이다.

家責先行 ― 가문의 책임이 먼저 간다.

권위는 뒤에 서고, 책임은 앞에 선다.

이 서사는 앞 장의 영암고 사안과 정면으로 마주 선다. 영암고가 보여 준 것이 ‘기관의 권위가 학생의 생명 앞에 먼저 선’ 응답 구조의 실패였다면, 천 년 전 이천 장군의 이야기는 그 정반대다 ― 가장 보호할 수 있는 자를 가장 앞에 세운, 책임의 선행(先行)이다. 그래서 태사공 묘역의 복원은 단순한 지형·형국의 회복이 아니라, ‘장자의 희생을 잊지 않는 윤리적 복원’의 계승이다.

지도자의 자녀부터 먼저 희생할 수 있는 나라가, 정의로운 나라다.

이 물음이, 다음 장 대통령 제안의 도덕적 근거다.

제1장. 대통령께 드리는 제안 ― 정책 이전의 시간

이재명 대통령께.

이 제안은 정책 이전의 문제입니다. 시간의 문제입니다.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헤어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그리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그리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하나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나무는 자랐고, 그 사람은 구십 세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단이 만들어 낸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설명하려 하면 비극이 되고, 그대로 두면 사라집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살아온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전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만날 수 있는 형식입니다.

세종시 전의 심중매원에는,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역까지 이어지는 700미터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이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 전에 서로의 시간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제안

남북의 정치적 논의 이전에, 이산가족의 마지막 세대가 함께 설 수 있는 ‘장면’을 먼저 만드십시오.

그 장면은 협상보다 강합니다. 말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갈등도 결국 같은 문제입니다. 만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이 먼저 내려지기에, 전쟁이 반복됩니다. 대한민국은 그 구조를 가장 오래 겪은 나라이며, 따라서 이 문제를 끝낼 수 있는 조건도 가진 나라입니다. 이 제안은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끝내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입니다. 검토를 요청드립니다.

지금 만나야 하는 이유는 정치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게 하십시오. 그 다음에 결정하십시오.

제2장. 왜 국가의 구체적 협조가 필요한가

이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결단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실제로 거행이 준비되는 행사가 있고, 그 앞에 국가의 구체적 협조가 필요한 지점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문중과 함께 2026년 가을 시조 추향제를,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역까지 700미터 의례 경로를 따라 산제사로 거행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다음의 이유로 국가의 협조를 필요로 합니다.

협조 영역 필요한 이유
안전·질서 산제사와 700미터 도보 이동에는 참여자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이 행사의 안전한 진행에 관계 기관의 협조를 요청한다.
문화경관 보존 행정 조사 이후 동일 묘역 내에서 봉분 형상·지형의 변화가 확인되어, 그 경위 확인과 원형 보존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세종시·국가유산청 등 관계 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 (원인·책임에 대한 단정 없이 사실 확인 절차를 따른다.)
남북 공동 제례의 합법적 통로 본 제례는 남과 북의 일가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제례로 추진되며, 이는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령과 관계 기관과의 협의 범위 내에서만 추진된다. ‘만날 수 있는 형식’을 행정이 법 절차 안에서 함께 열어 주기를 요청한다.
기록·공표 행사는 영상·사진·문서로 기록·보존되어 출판·학술·정책 자료로 활용된다. 한국 전통 제례와 공동체 문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공식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이 일은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안전을 맡는 공무원, 절차를 여는 행정, 경위를 확인하는 관계 기관, 그리고 함께 걷는 국민 ―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한 걸음을 맡을 때, 비로소 ‘금강의 기적’은 말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됩니다. 세종에서 시작된 그 장면이, 위대한 한국인의 문명을 다시 세우는 출발이 됩니다.

제3장. 비극에서 참여로 ― 세계로 여는 형식

이 제안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지만 한반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출발점은 하나의 장면입니다 ―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헤어진 한 사람이 구십 세가 넘도록 그리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시간을 하나의 나무로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면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 장면을 사람들이 함께 걷는 구조로 바꿀 때, 비극은 공유되는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추모의 장소가 아니라, 함께 걸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 단계는 이 장면을 세계가 참여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형식으로 패션을 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패션은 가장 빠르게 사람을 모으는 산업이자, 가장 감각적으로 문화를 전달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뉴욕이 아니라 파리를 택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파리는 힘이 아니라 문화로 세계를 움직이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참여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이 공간을 축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비극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상태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걷고 같은 질문 앞에 서는 것. 이 구조가 완성되면, 국적도 이념도 체제도 그 순간만큼은 의미를 잃습니다. 남는 것은 하나,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대한민국이 잘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분단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상처를 가졌기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지만 세계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비극은 공유될 때 끝나고, 함께 걷는 순간 구조가 된다.

이 글은 개인의 이야기에서 세계의 구조로, 비극에서 참여로, 장소에서 산업으로, 한국에서 파리로, 그리고 세계로 이어집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이 장면을 실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세종 전의 심중매원 ― 사랑나무 · 700미터 · 시조 묘역 · 밥상

이것은 하나의 순서다. 이 순서를 통과하지 않은 결정은 위험하다.

걸어라. 그 다음에 결정하라. 책임질 수 없다면, 다시 걸어라.

2026년 6월 18일

대통령하고도 바꾸지 않는 직업, 건축사 이춘화

2026년 6월 18일 작성 · 2026년 10월 9일 고침

제 7 부

나는 영화적 건축을 했을 뿐이다

2026년 한글날에 쓴 글

박광서 지사와 그 제자의 말은 필자가 직접 들은 것으로 문서 기록이 아니다. 검독수리는 실제 새가 아니라 영화적 건축의 상징이다.

나는 건축사다. 내가 해 온 일은 하나다. 영화적 건축이다.

영화적 건축은 건물을 한 장의 사진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이 그 안을 지나가는 시간으로 본다. 그리고 그 시간의 주인공을 가장 힘없는 사람으로 둔다.

기숙사의 주인공은 학생이다. 학생은 그 건물에서 밥을 먹고, 공부하고, 잠을 잔다. 잠든 사람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그래서 기숙사는 잠든 아이를 기준으로 지어야 한다.

2009년 나는 영암고 기숙사의 설계도서를 검토했다. 서류를 펼치고 그 안에서 잠들 아이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이 기둥과 보는 실험으로 확인된 것인가.

2010년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는 실험으로 성능을 평가한 뒤 보강 방안을 정하라고 했다. 올해 8월 교육청은 나에게 답했다.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다.

나는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다. 누구를 무너뜨리려고 한 것도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주인공이 무사한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다.

17년이 지났다. 질문은 그대로다. 그 아이들이 잠든 집은 확인되었는가.

1993년 한겨레신문은 지관 박광서 씨를 소개했다. 명당을 찾아 30년을 다닌 분이다. 그분의 좌우명은 이것이었다. 살아서 덕을 쌓아야 좋은 묏자리를 얻는다.

나는 그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명당의 주인은 따로 있다. 위대한 한국인의 신화가 창조될 것이다. 그분의 제자인 강 한의사는 곡성에서 난 신숭겸 장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임금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다.

나는 여기에 내 생각을 보탠다. 여러 전문가의 생각을 모아 얻은 것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의 멋이다. 나는 이 멋을 아는 사람이 세상의 문명을 이끈다고 본다.

좋은 땅보다 좋은 사람이 먼저다. 건축도 같다. 좋은 건물보다 그 안에서 잠드는 사람이 먼저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세종은 글을 몰라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 힘 있는 사람을 위한 글자가 아니었다. 나는 위대한 한국인의 신화가 거기서 시작됐다고 본다.

신화는 큰 건물이나 큰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글 모르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드는 일, 잠든 아이를 위해 기둥 하나를 확인하는 일로 만들어진다. 그런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위대한 한국인이다. 나는 그 신화를 우리가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글자로 전하는 것이 있고,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것이 있다. 구전심수(口傳心授)다. 나는 박광서 지사의 말을 그렇게 받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약한 사람을 해치지 마라, 잘못했으면 인정하라. 이런 것은 책이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배운다.

이제 그 밥상을 넓힐 때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아니다. 심정적 한국인, 곧 마음으로 한국인이 된 세계의 사람들까지 함께 앉는 밥상이다. 나는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본다.

세종에는 700미터 길이 있다. 사랑나무에서 철길을 건너 능선을 올라 조상의 자리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 끝에서 검독수리가 날아오른다. 길을 걸은 사람은 안다. 그 독수리가 곧 나라는 것을.

한글을 만든 임금의 이름이 세종이고, 그 길이 있는 도시의 이름도 세종이다.

오늘, 세종에 검독수리가 날아오른다.

2026년 10월 9일 한글날

건축사 이춘화

제 8 부

『동양평화론 2026』 요약

이춘화 · 최금희 · 이유은 지음 ― 1910년의 질문, 2026년의 응답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다섯 편으로 계획했고 두 편에서 멈췄다. 이 책은 그 빈자리 곁에 앉아 쓴 글이다. 열다섯 장은 이렇게 흐른다.

1~6장. 전남 장흥 정남진에서 출발해 하얼빈의 아침, 뤼순의 법정, 세례명 토마스, 감옥에서 쓴 책, 그리고 혈연이 아닌데도 안중근의 제사를 지내 온 장흥의 기억을 따라간다.

7~11장. 저자 집안의 시조 이야기로 돌아온다. 전해 오는 이야기를 정사에서 찾아보고, 나오지 않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고 적는다. 제사가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자리, 700미터 길의 설계, 함께 걷고 앉고 먹는 의식, 문을 여는 문중을 다룬다.

12~15장. 한국인의 존엄에서 인간의 존엄으로 넓힌다. 판단이 자동화되는 AI 시대의 전쟁을 묻고,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전쟁 앞에서 “밥은 먹자”고 말한다.

이 책의 약속은 하나다. 확인한 것은 확인했다고 쓰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쓴다.

제 9 부

「가전충효 세수인경」의 사료적 기원과 전승 과정 연구 요약

이춘화(건축사) ― 15세기 당대 사료와 후대 전승의 층위 구분

전의이씨의 가훈 여덟 자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 언제부터 세종의 글씨로 전해졌는지를 사료로 따져 본 연구다.

확인되는 사실. 1432년 세종이 이정간에게 벼슬을 높이고 궤장을 내리며 효행을 기린 일은 『세종실록』으로 확인된다.

확인되지 않는 것. 그 교서와 같은 시기의 기록에는 여덟 자가 나오지 않는다.

후대 기록. 여덟 자를 세종의 글씨로 적은 가장 이른 기록은 지금까지 확인된 범위에서 16세기 후반 족보로 보고된다(원본 대조 필요). 관찬 기록으로는 『승정원일기』 1722년 기사가 처음이다.

결론.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층위를 나누는 것이다. 세종의 포상은 사실이다. 여덟 자가 세종의 글씨라는 것은 전승이다. 두 가지를 섞지 않는 것이 가훈의 값을 지키는 길이다.

고친 기록 (v4 2026.6.18 → v5 2026.10.9)

1. 명의를 ‘전의·예안이씨화수회본부 현창위원장’에서 ‘건축사 이춘화’ 개인으로 바꾸었다. 발신란에는 작성 당시의 직함을 괄호로 남겼다.

2. jyl.cc 주소를 지웠다. 해당 누리집의 글이 더 이상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3. 제6부 제0장 ①을 문서에 맞게 바로잡았다. 목포대학교 검토는 설계 단계가 아니라 준공 뒤(2010.8)의 것이고, 판결(2011.2.23 선고)이 인정한 것은 수 개의 구조계산서가 존재한 특이한 상황이다.

4. 제6부 제0장 ④에 2026년 8월 7일 교육청 회신을 덧붙였다.

5. ‘대사공묘역’을 ‘태사공묘역’으로 통일했다.

6. 제7부(한글날 글 전문), 제8부(『동양평화론 2026』 요약), 제9부(「가전충효 세수인경」 연구 요약)를 새로 더했다.

7. 그 밖의 본문은 2026년 6월 18일 판 그대로이다. 이 자료집은 건물이 지금 위험하다고 단정하지 않으며, 안전 판단의 근거 자료가 확인되기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