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적 건축을 했을 뿐이다
박광서 지사와 그 제자의 말은 글쓴이가 직접 들은 것으로 문서 기록이 아니다. 검독수리는 실제 새가 아니라 영화적 건축의 상징이다.
나는 건축사다. 내가 해 온 일은 하나다. 영화적 건축이다.
영화적 건축은 건물을 한 장의 사진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이 그 안을 지나가는 시간으로 본다. 그리고 그 시간의 주인공을 가장 힘없는 사람으로 둔다.
기숙사의 주인공은 학생이다. 학생은 그 건물에서 밥을 먹고, 공부하고, 잠을 잔다. 잠든 사람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그래서 기숙사는 잠든 아이를 기준으로 지어야 한다.
2009년 나는 영암고 기숙사의 설계도서를 검토했다. 서류를 펼치고 그 안에서 잠들 아이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이 기둥과 보는 실험으로 확인된 것인가.
2010년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는 실험으로 성능을 평가한 뒤 보강 방안을 정하라고 했다. 올해 8월 교육청은 나에게 답했다.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다.
나는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다. 누구를 무너뜨리려고 한 것도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주인공이 무사한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다.
17년이 지났다. 질문은 그대로다. 그 아이들이 잠든 집은 확인되었는가.
1993년 한겨레신문은 지관 박광서 씨를 소개했다. 명당을 찾아 30년을 다닌 분이다. 그분의 좌우명은 이것이었다. 살아서 덕을 쌓아야 좋은 묏자리를 얻는다.
나는 그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명당의 주인은 따로 있다. 위대한 한국인의 신화가 창조될 것이다. 그분의 제자인 강 한의사는 곡성에서 난 신숭겸 장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임금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다.
나는 여기에 내 생각을 보탠다. 여러 전문가의 생각을 모아 얻은 것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의 멋이다. 나는 이 멋을 아는 사람이 세상의 문명을 이끈다고 본다.
좋은 땅보다 좋은 사람이 먼저다. 건축도 같다. 좋은 건물보다 그 안에서 잠드는 사람이 먼저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세종은 글을 몰라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 힘 있는 사람을 위한 글자가 아니었다. 나는 위대한 한국인의 신화가 거기서 시작됐다고 본다.
신화는 큰 건물이나 큰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글 모르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드는 일, 잠든 아이를 위해 기둥 하나를 확인하는 일로 만들어진다. 그런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위대한 한국인이다. 나는 그 신화를 우리가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글자로 전하는 것이 있고,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것이 있다. 구전심수(口傳心授)다. 나는 박광서 지사의 말을 그렇게 받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약한 사람을 해치지 마라, 잘못했으면 인정하라. 이런 것은 책이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배운다.
이제 그 밥상을 넓힐 때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아니다. 심정적 한국인, 곧 마음으로 한국인이 된 세계의 사람들까지 함께 앉는 밥상이다. 나는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본다.
세종에는 700미터 길이 있다. 사랑나무에서 철길을 건너 능선을 올라 조상의 자리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 끝에서 검독수리가 날아오른다. 길을 걸은 사람은 안다. 그 독수리가 곧 나라는 것을.
한글을 만든 임금의 이름이 세종이고, 그 길이 있는 도시의 이름도 세종이다.
오늘, 세종에 검독수리가 날아오른다.
2026년 10월 9일 한글날
건축사 이춘화
발표와 요약
오늘은 한글날이다. 세종은 글로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마음을 따라, 내가 써 온 글의 줄거리를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내놓는다.
이 발표는 건축사 이춘화 개인의 이름으로 한다. 문중이나 기관의 공식 문서가 아니다. 한글날 글과 통합자료집, 가전충효 연구 공개판은 전문을 싣는다. 『동양평화론 2026』은 요약을 싣고 책으로 잇는다.
1. 나는 영화적 건축을 했을 뿐이다 (전문 공개)
한글날에 쓴 글이다. 한국어와 영어로 따로 실었다.
2. K-OMPHALOS 통합자료집 (요약과 전문)
2026년 6월 18일에 엮은 여섯 편의 글이다. 모두 한 길을 향한다. 세종 전의면의 700미터 길이다.
- 제1부 「함께 밥을 먹자」: 영화적 건축 선언이다.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라고 본다. 영화적 건축은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게 하는 건축이다.
- 제2부 답사 종합보고서: 2022년 그리스에서 2026년 이탈리아까지 네 차례 답사의 기록이다.
- 제3부 세종 700미터 문화경관: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역에 이르는 길을 살아 있는 문화경관으로 보존하자는 정책 건의다.
- 제4부 금강 이도길: 공주 신관동에서 세종 심중매원까지 금강 물길로 잇는 구상이다.
- 제5부 금강의 기적: 세종·공주·대전을 한 권역으로 묶는 정신문화 구상이다.
- 제6부 「걸어라, 그 다음에 결정하라」: 영암고 기숙사 사안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결정 전에 멈추고 다시 묻는 구조가 없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이산가족의 마지막 세대가 함께 설 수 있는 자리를 먼저 만들자고 제안한다.
3. 『동양평화론 2026』 (요약)
이춘화·최금희·이유은이 함께 썼다. 부제는 "1910년의 질문, 2026년의 응답"이다.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다섯 편으로 계획했고 두 편에서 멈췄다. 이 책은 그 빈자리 곁에 앉아 쓴 글이다. 열다섯 장은 이렇게 흐른다.
- 1~6장: 전남 장흥 정남진에서 출발해 하얼빈의 아침, 뤼순의 법정, 세례명 토마스, 감옥에서 쓴 책, 그리고 혈연이 아닌데도 안중근의 제사를 지내 온 장흥의 기억을 따라간다.
- 7~11장: 저자 집안의 시조 이야기로 돌아온다. 전해 오는 이야기를 정사에서 찾아보고, 나오지 않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고 적는다. 제사가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자리, 700미터 길의 설계, 함께 걷고 앉고 먹는 의식, 문을 여는 문중을 다룬다.
- 12~15장: 한국인의 존엄에서 인간의 존엄으로 넓힌다. 판단이 자동화되는 AI 시대의 전쟁을 묻고,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전쟁 앞에서 "밥은 먹자"고 말한다.
이 책의 약속은 하나다. 확인한 것은 확인했다고 쓰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쓴다.
한국어판은 부크크 전자책으로 2026년 10월 2일에 나왔다. 영어판은 아마존에서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나와 있다. 86쪽이고 사진은 한 장이다.
아마존에서 책 보기 (영어판)예스24에서 책 보기 (한국어판)
4. 「가전충효 세수인경」의 사료적 기원과 전승 과정 연구 (요약과 전문)
전의이씨의 가훈 여덟 자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 언제부터 세종의 글씨로 전해졌는지를 사료로 따져 본 연구다.
- 확인되는 사실: 1432년 세종이 이정간에게 벼슬을 높이고 궤장을 내리며 효행을 기린 일은 『세종실록』으로 확인된다.
- 확인되지 않는 것: 그 교서와 같은 시기의 기록에는 여덟 자가 나오지 않는다.
- 후대 기록: 여덟 자를 세종의 글씨로 적은 가장 이른 기록은 지금까지 확인된 범위에서 16세기 후반 족보로 보고된다. 관찬 기록으로는 『승정원일기』 1722년 기사가 처음이다.
- 결론: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층위를 나누는 것이다. 세종의 포상은 사실이다. 여덟 자가 세종의 글씨라는 것은 전승이다. 두 가지를 섞지 않는 것이 가훈의 값을 지키는 길이다.
읽는 분께
- 사료로 확인된 것, 문중에 전해 오는 것, 나의 해석을 나누어 적었다.
- 영암고등학교 기숙사에 관한 글은 건물이 지금 위험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판단의 근거 자료가 확인되기를 요청한다.
- 검독수리는 실제 새가 아니라 영화적 건축의 상징이다. 700미터와 보행 시간은 현장 실측 전의 잠정값이다.
- 틀린 곳을 알려 주시면 고치고, 고친 기록을 남기겠다.
세종에는 700미터 길이 있다. 함께 걷고, 함께 앉고, 함께 밥을 먹자.
2026년 10월 9일 한글날
건축사 이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