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이춘화 기록실

건축사 이춘화 기록실

문서로 남긴 것만 적는다. 날짜와 번호가 있는 사실, 그리고 그 위에 선 나의 생각을 나누어 쓴다.

세종시 이도 심중매원

전의이씨 시조 이도 심중매원,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소(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산3-1)까지 700m 문화경관길

심중매원(心中梅園)은 마음속에 매화꽃이 피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동산은 기대고 쉬는 곳이다.

心中梅園 글씨와 매화 가지 그림, 세로쓰기 시
心中梅園. 이춘화 건축사가 설계한 나주 심중매원(나주 철야권역 농촌개발사업)은 세종시 이도 심중매원이 되었다. 이것이 인생이 건축인 영화적 건축이다.
修心如屋 글씨와 매화 가지 그림, 세로쓰기 시
修心如屋. 같은 시를 영광 원전에서는 일터에 맞게 고쳐 썼다. 일하는 집에서 마음을 닦는다는 뜻이다.

11월 10일, 그 길에서 만납시다

올해도 사랑나무에서 시조 이도 묘역까지 700미터를 걷습니다. 나는 전의이씨 일가 한 사람으로서 초대합니다.

종교가 달라도 좋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좋습니다. 함께 걷고, 철길 앞에서 멈추었다 건너고, 내려와서 밥 한 끼 같이 먹읍시다.

2026년 11월 10일,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문의는 맨 아래 연락처로.

이 이름은 2008년 나주 봉황면 철야권역 농촌마을 설계 때 내가 지었다. 그 한 해 전인 2007년 11월, 영광2발전소 취수구정비실을 설계하며 꼬리 없는 고래를 떠올렸다. 그 이야기를 2년 동안 다듬어 2009년 8월 14일 『네모난 고래』로 마쳤다. 마음이 닦이면 사랑의 꼬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나주 봉황면 철야권역 심중매원 권역활성화센터 조감도. 들판 곁 이층 한옥과 마당, 공연 마당, 주차장
나주 봉황면 철야권역 「심중매원」 권역활성화센터 조감도
영광2발전소 취수구정비실 이미지 스케치, 2007년 12월 28일
영광2발전소 취수구정비실 이미지 스케치(2007.12.28)
영광2발전소 취수구정비실 신축공사 조감도. 고래 머리처럼 둥근 유리 벽면
영광2발전소 취수구정비실 조감도. 마루건축사사무소
네모난 고래 디자인 스토리 손그림. 네모난 고래가 여행을 떠나 하얀 고래를 만나고, 꿈을 품고 살면 하트 모양 꼬리가 생긴다
『네모난 고래』 디자인 스토리 손그림

“난 꼬리가 없어.” “날 믿어.”
아롱이는 자신의 몸에서 돋아난 마음의 꼬리로 파도를 가를 수 있었다.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 보낸 첫 번째 편지

2024년 10월 6일 · 한국어 원본

하얀 고래가 PEACE OF LOVE 표지를 단 사랑나무를 바라보는 그림. 아래에 SEJONG CITY
세종시 사랑나무와 고래

존경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

저는 대한민국의 이춘화 건축사입니다. 천년명문가 전의이씨 집안의 현창위원장으로서,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핵의 위협과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사랑과 형제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내가 너희 눈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말씀처럼,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때입니다.

최근 세종시에 사랑나무가 심어졌고, 오래전 영광원전에서는 꼬리 없는 고래가 탄생했습니다. 이 상징물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 그리고 인류의 상호 존중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고래는 힘과 보호를 상징하며, 꼬리가 없다는 것은 미완의 상태를 나타내면서도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의미합니다. 사랑나무는 자연과 사랑의 힘으로 이 땅에 평화를 심을 수 있는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성하께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중재자로 나서 주시길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사랑의 상징인 세종시 사랑나무와 영광원전의 꼬리 없는 고래가 하나 되어, 하느님의 섭리와 경륜이 이루어져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드립니다. 여호와이레의 뜻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성하와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4년 10월 6일, 이춘화(사도요한) 드림

편지는 한국어 원본과 영어·이탈리아어·라틴어 번역을 함께 보냈다. 그 뒤 이틀에 걸쳐 두 번째, 세 번째 편지를 이어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4월 선종했다.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 보낸 두 번째 편지

2024년 10월 7일 · 한국어 원본

새싹이 돋은 고래가 love라고 적힌 하트가 달린 나무 곁에 엎드린 그림
사랑나무 곁의 고래

존경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

저는 대한민국의 이춘화 건축사입니다. 천년명문가 전의이씨 집안의 현창위원장으로서, 조상의 얼을 되살리며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앞서 보내드린 첫 번째 편지에서 저는 세종시의 사랑나무와 영광원전의 꼬리 없는 고래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이 상징물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전 세계의 화합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두 번째 편지를 통해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성하의 중재 역할을 간절히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한반도의 긴장은 군사적 갈등과 핵 위협으로 인해 날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의 사랑과 형제애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성하께서 중재자가 되어주시고, 세종시 사랑나무와 영광원전의 꼬리 없는 고래가 상징하는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여호와이레의 뜻으로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성하와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4년 10월 7일, 이춘화(사도요한) 드림

아래 사진들은 두 번째 편지와 함께 쓴 이미지다. 페이스북을 통해 교황청에 직접 전달했다.

그리스 델피 유적의 옴파로스 돌. 철제 울타리 안 돌 받침 위에 놓인 원뿔형 돌
그리스 델피의 옴파로스
둥근 나무 앞에 선 세 사람
왼쪽부터 고 이한유 회장, 사랑나무를 평생 키우신 어르신, 이춘화 건축사. 뒤의 둥근 나무가 사랑나무다. 어르신은 방배동 법조타운에서 판사 남편을 만나 결혼해 평생 이 나무를 키우셨다.
한국수력원자력 영광 수심여옥 조감도
수심여옥(영광). 영화적 건축의 열매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 보낸 세 번째 편지

2024년 10월 8일 · 한국어 원본

머리 위에 하트가 달린 작은 고래가 줄기에 하트 무늬가 새겨진 나무 곁에 있는 그림
사랑나무와 고래

존경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

저는 대한민국의 이춘화 건축사입니다. 전의이씨 집안의 현창위원장으로서,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저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마지막 열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랑의 상징으로 세종시에 심어진 사랑나무와 오래전 영광원전에서 탄생한 꼬리 없는 고래는 하느님의 섭리와 경륜을 나타내는 상징들입니다. 고래는 보호와 힘을 상징하며, 꼬리가 없다는 것은 미완의 상태를 나타내지만,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의미합니다. 이 두 상징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한반도와 전 세계에 하느님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핵무기의 위협 속에서 한반도는 긴장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형제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내가 너희 눈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말씀처럼, 이제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때입니다.

성하께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중재자로 나서 주시길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여호와이레의 뜻대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성하와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4년 10월 8일, 이춘화(사도요한) 드림

그 이름이 2022년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로 왔다. 시조 이도 묘소 아래 사랑나무에서 묘소까지, 700미터 길이다. 사랑나무는 2023년 서울 방배동에서 이곳 사당 곁으로 옮겨 심었다.

사랑나무에서 시조 이도 묘소까지 700미터 길 안내도. 철길 앞에서 멈추고, 기다리고, 건넌다.
사랑나무에서 시조 이도 묘소까지 700미터.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이 길의 근거는 오래된 문서에 있다. 청강공 이제신(1536–1583)이 1573년에 쓴 제시조묘문이 이 길을 기록한 가장 이른 글이다. 450년 전의 기록이 지금의 길을 받친다.

七百步 · 700m

전의이씨 시조 이도 · 심중매원 700m 문화경관길 연작
두 어른과 한 조상, 그리고 다시 걷는 길
SEVEN HUNDRED STEPS — Two Elders, One Ancestor, and the Path We Walk Again

序 · 길

사랑나무에서 시작한다.

철길이 있다.

건널목을 건너면 들길이고,
들길이 끝나면 산이다.

굽은 길을 돌아
산등성이를 오르면
시조의 묘소가 있다.

칠백 미터.

걸으면 닿는 거리다.

그러나 어떤 길은
미터로 잴 수 없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무덤을 찾고도
그곳이 맞는지 의심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묘역을 쓸고
제를 올린 사람이 있었다.

오랜 세월 뒤에는
죽음을 앞두고도
그 제사를 걱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갔다.

말은 남았다.

나는 그 말을 들고
사랑나무 아래에 선다.

그리고 걷는다.

第一篇 · 의심하면서도 절한 사람

청강공 이제신(李濟臣) 「祭始祖墓文」 · 1573

그는 먼저
옛 성터에 올랐다.

세월이 지나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그는 적었다.

片瓦雖存 門館莫識
편와수존 문관막식

조각 기와는 남아 있으나
옛 문과 집은 알아볼 수 없구나.

산에서 내려와
시조의 묘소를 찾았다.

玄兆有丘 是曰永宅
현조유구 시왈영택

묘역에 언덕이 있으니
이를 영원한 집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확신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縱厥遙遙 誤認非郭
종궐요요 오인비곽

세월이 너무 아득하니
행여 다른 무덤을
잘못 알아본 것은 아닌가.

그는 의심했다.

그러나 떠나지 않았다.

묘역을 쓸었다.

제물을 올렸다.

절했다.

그리고 적었다.

一氣猶然 有誠斯格
일기유연 유성사격

한 기운은 여전히 이어져 있으니
정성이 있다면 감응하리라.

사백오십여 년 뒤,

나는 그의 확신보다
그의 의심 앞에 오래 서 있다.

모르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정성을 다했다.

그것이 어쩌면
그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길인지도 모른다.

He was not certain.
Still, he stayed.
He swept the ground,
prepared the offering,
and bowed.
The one spirit remains.
Where there is sincerity,
it will reach.

第二篇 · 고(故) 이열호 어르신을 보내며

石灘賢宗烈鎬挽 · 석탄현종열호만 · 석탄 이열호 어르신을 떠나보내며 지은 추모시

忽別賢宗上碧天
홀별현종 상벽천
홀연히 어진 어른과 이별하니
푸른 하늘로 오르셨네.

長城秋色淚如泉
장성추색 누여천
장성의 가을빛 아래
눈물이 샘처럼 흐르네.

終身廬墓依親膝
종신여묘 의친슬
평생 묘 곁을 지키며
부모 슬하를 떠나지 않으셨고,

一燭深宵照墓前
일촉심소 조묘전
깊은 밤 촛불 하나
묘 앞을 밝혔네.

臨終一語守山祭
임종일어 수산제
마지막에 남기신 한마디.
산제사를 지켜라.

此託吾銘骨髓堅
차탁오명 골수견
그 부탁을
뼛속 깊이 새겨 간직하리.

仰見中宵新一宿
앙견중소 신일수
한밤 하늘을 우러르니
별 하나 새로 떴네.

今宵父母抱兒眠
금소부모 포아면
오늘 밤은
부모님 품에 안겨
편히 주무시리.

어르신은 마지막까지
당신이 떠난 뒤의 제사를 걱정하셨다.

내 기억에 남은 말씀은 이렇다.

“나 죽으면 시제고 뭐고
나 몰라라 할 자들이다.”

나는 대답했다.
“제가 시제 지내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떠나는 사람에게 한 약속은
입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을이 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제물을 들고,

낙엽을 밟고,

숨을 고르며,

묘 앞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나는
약속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했다.

At the end of his life,
he worried about the rite
he would no longer be there to keep.
I answered:
I will keep it.
Years later I understood:
A promise is not something we say.
A promise is something we walk.

第三篇 · 고(故) 이한유 회장을 보내며

賢宗漢裕會長挽 · 현종한유회장만 · 이한유 회장을 떠나보내며 지은 추모시

六月忽聞歸九天
유월홀문 귀구천
유월에 홀연히
하늘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네.

呼公熱淚洒靈筵
호공열루 쇄령연
공을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영전에 뿌리네.

承家忠孝擔宗事
승가충효 담종사
집안의 충효를 이어
종사를 짊어지셨고,

守祀仁敬奉祖先
수사인경 봉조선
어질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켜 조상을 받드셨네.

臨終一語守山祭
임종일어 수산제
마지막에 남기신 한마디.
산제사를 지켜라.

遺志千秋付後賢
유지천추 부후현
그 뜻을
먼 훗날의 후손에게 맡기셨네.

秋風又拂七百步
추풍우불 칠백보
가을바람은 다시
칠백 보의 길을 스쳐 가는데,

不見公行哭杜鵑
불견공행 곡두견
공의 걸음은 보이지 않고
두견새만 우네.

그 뒤로도
가을은 왔다.

풀은 자랐다.

낙엽은 떨어졌다.

기차는
제시간에 지나갔다.

건널목의 차단봉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려갔다 올라갔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함께 걷던 사람만
없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떠나면
길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남은 사람의 걸음이
길어지는 것이었다.

Autumn returned.
The train passed.
The crossing opened again.
Everything continued
except the man who once walked there.
Sometimes the road does not grow longer.
The footsteps of those left behind do.

第四篇 · 心中梅園七百步路

심중매원 칠백보로 · 심중매원 칠백 걸음의 길 · The Seven Hundred Steps of Simjungmaewon

사랑나무 아래에 선다.

조금 걸으면
철길이 나온다.

기차가 오면
멈춰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건널 수 없다.

기차가 지나간다.

차단봉이 올라간다.

다시 걷는다.

들길.

굽은 길.

산등성이.

지도에는
700m.

시에서는
七百步.

二老精靈陪我步
이로정령 배아보
두 어른의 넋이
내 걸음 곁에 계시고,

守祀不廢祭如逢
수사불폐 제여봉
제사를 그치지 않으니
제 올리는 날
다시 뵙는 듯하다.

나는 이제신을 본 적이 없다.

시조 이도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

두 어른도
이제 곁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두
한 길 위에 있다.

사백오십여 년 전의 사람이
앞에서 걷고,

두 어른이
그 뒤를 걷고,

내가 걷는다.

그리고 내 뒤에는

아직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걷고 있을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길은
땅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길이 있었다.

지도에는
칠백 미터.

그러나 그 길의 진짜 길이는

한 생에서
다음 생까지다.

Seven hundred meters on the map.
Seven hundred steps in the poem.
But the true distance
runs from one life
to the next.
The dead do not walk behind us.
They walk ahead.

第五篇 · 칠백 미터를 걸으시라

Walk the Seven Hundred Meters

전의에 오시거든
먼저 사랑나무로 오시라.

나를 만나러
서두르지 마시라.

나무 아래에서
잠시 누군가를 기다려 보시라.

아무도 오지 않아도
조금 더 기다려 보시라.

그리고
걸으시라.

철길 앞에서는
멈추시라.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마시라.

길이 열리면
건너시라.

들길에서는
천천히 걸으시라.

굽은 길에서는
한 번 뒤돌아보시라.

산등성이에서는
숨을 고르시라.

그리고 묘소 앞에 이르거든

누가 옳았는지
먼저 묻지 마시라.

누가 틀렸는지
먼저 가리지 마시라.

사백오십여 년 전
이제신도 의심했다.

縱厥遙遙 誤認非郭
종궐요요 오인비곽

세월이 너무 아득하니
행여 다른 무덤을
잘못 알아본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쓸었다.

차렸다.

절했다.

그리고 남겼다.

一氣猶然
일기유연

한 기운은
여전히 이어져 있다.

오랜 세월 뒤
두 어른의 말도 남았다.

守山祭
수산제

산제사를 지켜라.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오늘 다시 걷는다.

가는 길
칠백 미터.

돌아오는 길
칠백 미터.

나는 당신에게
믿으라고 하지 않겠다.

내 편에 서라고도
하지 않겠다.

다만,

사랑나무에서
여기까지 걸어오시라.

그리고 돌아갈 때

올 때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이 길은 충분하다.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結 · 無窮

무궁 · 다함이 없음 · MUGUNG — Without End

1573년,

한 사람이
묘 앞에서 의심했다.

그래도
절했다.

오랜 세월 뒤,

두 사람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지켜라.

오늘,

한 사람이
걷는다.

그것뿐이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이 오래 남기는 일은
언제나 이토록 작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기억하고,

한 사람이 적고,

한 사람이
다시 걸었다.

사람은 떠난다.

집은 무너진다.

기와는 깨진다.

글은 지워진다.

무덤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꽃이 지면
씨앗은 꽃이 있던 자리를 떠난다.

바람을 탄다.

어디에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봄,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던 자리에서
같은 꽃이 핀다.

그것을 우리는

無窮

이라 부른다.

다함이 없음.

오늘
내가 걷는다.

내일은
다른 사람이 걸을 것이다.

언젠가
내 이름도 잊힐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길이 남는다면.

아니,

누군가
다시 걸어 준다면.

그리고 그 사람 뒤에
또 한 사람이 온다면.

나는 그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 사람도
내 얼굴을 모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길을 걸었다.

그것이면 된다.

一氣猶然
일기유연

한 기운은
여전히 이어져 있다.

EPILOGUE

People leave.
Houses fall.
Tiles break.
Words disappear.
Even a grave
will one day return to earth.
So what remains?
In 1573,
a man stood before a grave
and admitted that he was not certain.
Still, he bowed.
Centuries later,
two elders left a few words behind:
Keep the rite.
And today,
someone walks.
Perhaps that is how memory survives:
someone remembers,
someone writes,
and someone
walks the path again.
From the Love Tree,
across the railway crossing,
through the fields,
and up the ridge.
700 meters on the earth.
七百步 in the poem.
Four and a half centuries
inside a single walk.
Do not believe me first.
Do not take my side first.
Walk.
And when you return,
if you are even slightly different
from the person who began,
the road has done its work.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One root.
Many flowers.
一氣猶然
The one spirit remains.
無窮 — MUGUNG
Without end.

2026년 10월 7일, 건축사 春和

섬광 같은 그리움

가을 산제사와 700m

가을이 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산으로 갔습니다.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 벌초한 자리를 살피고, 준비해 간 음식을 차리고 술 한 잔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부모와 조상을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조상의 묘소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상의 묘가 멀리 있는 사람도 있었고, 고향을 떠나 사느라 갈 수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세월이 지나 묘소가 어디인지조차 모르게 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가을이 되면 마음이 움직였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 마을에서 오래 함께 살았습니다. 이웃집 사정도 알고, 누구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상을 당하면 함께 슬퍼했습니다. 산제사가 있는 날이면 음식을 거들고 산길을 같이 가기도 했습니다. 꼭 자기 조상의 제사가 아니더라도 같은 마을 사람의 일로 여기며 함께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산길을 걷는 어느 순간 자기 부모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살아가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아주 뜻밖의 순간에 먼저 떠난 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다가 그럴 수도 있고, 밥을 먹다가 그럴 수도 있고, 길을 걷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잠깐인데 아주 강하게 가슴을 지나갑니다.

나는 그 마음을 ‘섬광 같은 그리움’이라고 부릅니다.

A Flash of Longing.

생각해보면 그리움에는 국경도 없고 남과 북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디에 산다고 다르겠습니까.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무슨 이념이 있겠습니까.

세종시 전의에는 사랑나무에서 시작해 철길을 건너 시조 묘소까지 올라가는 약 700m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 전의이씨 일가는 그 길을 걸어 시조 이도 할아버지의 묘소로 갑니다. 가을 추향제를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꼭 우리 일가만 걸어야 할까.

자기 조상의 묘소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우리와 함께 걸으면 되지 않을까.

아버지가 보고 싶은 사람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걷고, 어머니가 그리운 사람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걸으면 됩니다. 먼저 떠난 친구가 생각나는 사람은 그 친구와 함께 걷는 마음이면 됩니다.

같은 성씨일 필요도 없고 종교가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제례 방식에 따라 절을 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 한 사람 마음에 모시고 오면 됩니다.

사랑나무에서 만나 같이 출발하면 됩니다.

철길을 건너고 산길을 올라갑니다. 마지막 길이 가파르면 천천히 가면 됩니다. 앞서가는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조금 기다려주면 됩니다.

700m가 그렇게 긴 길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데는 어쩌면 그 정도 길이면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언젠가 북쪽에 사는 전의이씨 일가도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냥 같이 걸으면 됩니다.

할 말이 생기면 이야기하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없이 걸어도 됩니다. 같은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길을 다 걷고 나서 서로에게 한마디 물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그리워하며 여기까지 왔습니까?”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평화라는 것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어진 사람이 한번 만나는 것, 얼굴을 보는 것,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 같은 길을 걸어보는 것.

그런 일을 실제로 하려면 돈도 들 것입니다. 교통비도 들고 밥값도 들고, 멀리서 오는 사람에게는 잠잘 곳도 필요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데 쓰는 돈이라면 평화비용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쓰는 돈이 아니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게 하는 데 쓰는 돈입니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한 사람을 만나보자는 것입니다.

가을 산제사는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날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다시 돌아보는 날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먼저 간 사람을 생각하다 보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자리 하나쯤 남겨두면 됩니다.

올가을 사랑나무에서 그렇게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누가 옳은지를 말하기 전에, 서로 무엇이 다른지를 따지기 전에, 각자 보고 싶은 사람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700m를 같이 걸어보았으면 합니다.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섬광 같은 그리움.
A Flash of Longing.

2026년 10월 7일, 건축사 이춘화

계보는 순서가 있다

시조 이도에서 8세 3대 대파, 13세 45계파까지

전의이씨의 시조는 이도(李棹)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 태사공이다. 본관은 오늘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이다.

전의이씨의 역사는 어느 한 공파의 역사가 아니다. 시조 이도에서 시작한 천년 공동체의 역사다.

시조 뒤로 여러 대가 거의 한 줄기로 이어졌다. 7세 이천(李仟)에 이르러 후손이 크게 늘었다. 8세에서 처음으로 세 대파가 생겼다. 대사성공파, 문장공파, 선부전서공파다. 13세에 이르러 45계파로 나뉘었고, 그 뒤로 지파가 갈라졌다.

전의·예안이씨 분파세계도. 시조부터 13세 45계파까지 갈라지는 계통도
全義·禮安李氏分派世系圖

그러니 모든 공파가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8세의 대파, 13세의 중파, 후대의 지파는 생긴 때와 자리가 다르다. 어느 파를 말할 때는 몇 세에 갈라졌는지, 어느 줄기에 속하는지를 함께 말해야 한다.

요즘 AI와 인터넷 검색에서 이 순서가 흐려진 설명을 본다. 8세 대파와 13세 이후의 파가 같은 높이의 대표 파처럼 나란히 놓인다. 어느 파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계보가 생긴 순서가 바르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문제다.

후손 대부분은 자기 파조는 안다. 그러나 시조에서 대파가 생기기까지의 과정은 잘 모른다. 검색 결과가 순서를 흐리면 시조 이도의 역사와 7세 이천의 자리, 8세 세 대파와 13세 45계파의 짜임이 함께 가려진다.

나는 어느 파도 낮추거나 밀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시조에서 대파와 계파를 거쳐 지파로 내려오는 순서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자는 것이다. 잘못된 설명을 보면 나는 근거를 들어 고쳐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계보는 이름을 늘어놓은 목록이 아니다.
한 공동체의 기억이다.
시조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다.
후손에게 바른 역사를 전하는 일이다.

이 글은 2026년 6월 9일 발표했던 입장문을 바탕으로 개인의 글로 다시 썼다.

2026년 10월 6일, 건축사 이춘화

둥근 나무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
둥근 나무 앞에 함께 선 일곱 사람
함께 걸은 사람들

영화적 건축

나주 철야 心中梅園에서 修心如屋을 거쳐 세종 이도 心中梅園까지
공주·광주·세종·서울, 그리고 남북을 잇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동선

나주 철야 심중매원에서 출발해 한빛원전 제2발전소 수심여옥을 거쳐 세종시 이도 심중매원까지 연결된 작품이다.

오늘 나는 두 개의 글을 썼다. 하나는 공주대학교와 충남대학교의 통합을 바라보며 쓴 글이고, 다른 하나는 전남 국립의대 논란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하나는 대학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의 문제다. 하나는 공주에서 시작하고 다른 하나는 광주와 전남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두 글을 쓰고 나서 다시 바라보니 결국 하나의 이야기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과 그 공간을 연결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건축사다. 건물을 설계할 때 건물의 모양부터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이곳에 들어오는가.
그 사람은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 공간은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그 건축이 10년, 30년 뒤에도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이제 이러한 생각을 ‘영화적 건축’이라고 부른다.

修心如屋 — 직장은 마음과 삶을 닦는 곳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말이 있다. 修心如屋. 수심여옥. 나는 이것을 추상적인 글귀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이라는 건물 안에서 보낸다. 그곳에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난다. 일을 배운다. 책임을 진다.
실수한다. 갈등한다. 용서한다.
양보하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직장은 단순한 노동의 장소가 아니다. 마음을 닦는 곳이고, 결국 자신의 삶을 닦는 곳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修心如屋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건물만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건물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관계와 시간까지 생각해야 한다.

공간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다시 공간을 바꾼다.

여기에서 영화적 건축은 시작된다.

대학도 건물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

공주대학교와 충남대학교의 통합도 같은 눈으로 바라봤다. 대학 두 곳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조직개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각 지역이 가진 기능을 살려 연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전에는 과학과 연구가 있다. 세종에는 행정과 정책이 있다. 공주에는 교원양성의 전통과 백제 역사문화가 있다. 천안에는 산업과 공학이 있고, 예산에는 농생명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삼킬 필요가 없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하나의 네트워크가 되면 된다. 하나의 거대한 중심과 여러 주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중심을 서로 연결하는 다핵형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통합이란 이름으로 어느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강점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 서로 연결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대학의 통합만으로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공간구조를 설계하는 일로 바라본다.

전남 국립의대도 건물부터 지어서는 안 된다

전남 국립의대 문제에서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순천이냐 목포냐. 어디에 의대를 둘 것인가. 병원을 얼마나 크게 지을 것인가. 물론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이 먼저다. 누구를 길러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게 할 것인가. 의대 하나를 세운다고 전남의 의료 문제가 곧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전남 국립의대를 국가의료사관학교라는 새로운 국가 의료인력 양성체계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한다. 의사만 기르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 약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역학조사관, 재난심리 전문가, 의료공학자, AI 의료 전문가와 현장지휘 인력이 함께 배우고 훈련하는 체계다.

그리고 지역의 역할도 나누면 된다. 광주·화순은 교육·연구·중증진료. 순천·여수·광양은 산업재해·화학재난 의료. 목포·서남해는 도서·해양재난 의료.

똑같은 대형병원을 여러 곳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능력은 연결하고 부족한 것은 정확하게 보완한다.

있는 것은 제대로 연결하고,
없는 것은 정확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내가 생각하는 건축이다.

공주와 광주는 여기에서 만난다

그러고 보면 두 제안은 구조가 같다. 공주–대전–세종–천안–예산은 교육·연구·정책·산업·농생명으로 연결된다. 광주–화순–순천–목포–해남은 의료·재난·AI와 국가 의료인력 양성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두 네트워크가 다시 만난다. 대전의 연구역량과 광주의 AI 기반, 해남의 국가 AI 컴퓨팅 자원을 연결할 수 있다. 천안·아산과 광주는 산업과 모빌리티로, 예산과 전남은 농생명으로 연결할 수 있다. 공주와 나주는 역사문화로 연결할 수 있다. 백제와 마한이다.

행정구역을 또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장소와 정체성을 지키면서 기능을 연결하자는 것이다.

공주가 공주답게 남고,
광주가 광주답게 성장하며,
세종이 세종의 역할을 하고,
대전과 천안과 예산, 순천과 목포와 해남이 각자의 강점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메가성장이다. 중심 하나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기능별 중심을 만들고, 그 중심들을 사람과 교통과 지식과 산업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도 심중매원 700m

여기에서 修心如屋은 또 다른 공간으로 확장된다. 직장이라는 건물 안에서 마음을 닦았다면, 이번에는 밖으로 나와 길을 걷는다.

세종의 사랑나무에서 출발한다.
철길을 만난다.
멈춘다. 기다린다. 건넌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시조 이도 묘소까지 약 700m.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결정하기 전에 함께 700미터를 걸어보자는 것이다.

왜 걷는가.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노와 행동 사이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권력과 명령 사이에도 시간이 필요하며, 전쟁과 공격 사이에는 더더욱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700m를 ‘충동과 양심 사이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700m는 단순한 보행거리가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리이며, 성급한 결정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공간이다.

修心如屋에서 心中梅園으로

이제 두 공간이 연결된다. 修心如屋. 직장이라는 건축공간에서 사람과 부딪치며 마음을 닦는다. 그리고 心中梅園. 그렇게 닦은 마음속에 매화 한 송이를 피운다.

매화는 산에만 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핀다.
겨울을 견딘 매화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듯,
미움을 내려놓은 자리에 이해가 피고,
욕심을 내려놓은 자리에 양심이 피고,
서로 손을 잡는 그 자리에 평화가 핀다.
그 꽃을 피우려고 우리는 칠백 미터를 걷는다.

직장에서 시작된 마음의 건축이 700m의 길로 나오고, 그 길이 도시로 이어지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마침내 대한민국을 연결한다.

그래서 이도 심중매원은 정원 하나를 만드는 사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속에 정원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영화적 건축이다

영화에는 장면이 있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시간이 흐른다. 사람이 움직인다. 앞 장면에서 일어난 일이 다음 장면의 사람을 변화시킨다. 건축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일한다. 사람과 부딪친다. 마음을 닦는다.
修心如屋.
밖으로 나온다. 700m를 걷는다.
멈춘다. 기다린다. 건넌다. 자신을 돌아본다.
心中梅園.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앉는다. Walk Together. Sit Together. Share a Meal. 함께 걷고, 함께 앉고, 함께 밥을 먹는다.

이것이 하나의 영화처럼 이어지는 것이다. 공간 → 사람 → 시간 → 마음 → 관계 → 공동체. 나는 이것을 영화적 건축이라고 부른다.

건축물이 없어도 건축은 시작될 수 있다

공주대·충남대 통합도, 전남 국립의대도, 광주·전남의 미래도, 이도 심중매원 700m도, 서울 장안동에서 준비하는 남북 일가의 만남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사람을 연결할 것인가.

대학과 지역을 연결하고, 병원과 환자를 연결하고, 연구와 산업을 연결하고, 백제와 마한을 연결하고, 남과 북의 사람을 연결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결하는 것이다.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제도가 바뀌어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의외로 가장 작은 곳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다.

나주에서 영광을 지나 세종으로

돌이켜보면 이 생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주 철야 心中梅園에서 출발했다. 마음속에 매화가 피는 정원을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영광의 한빛원전 제2발전소 修心如屋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마음과 삶을 닦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세종으로 왔다. 이도 心中梅園. 이번에는 마음속의 정원이 실제 700m의 길과 만났다.

나주에서는 마음속에 정원을 그렸고,
영광에서는 사람이 일하는 공간에서 마음을 닦는 것을 생각했으며,
세종에서는 사람이 직접 걸으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돌아보게 했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질문은 하나였다. 건축은 사람에게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영화적 건축 — 대한민국의 동선을 그리다

건물을 먼저 짓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보고, 사람이 살아갈 방법을 생각하고, 사람이 움직일 길을 그린다.

修心如屋. 직장에서 마음을 닦는다. 心中梅園. 마음속에 매화를 피운다. 그리고 700m를 함께 걷는다.

공주에서 대전과 세종으로, 천안과 예산으로, 광주·화순·순천·목포·해남으로, 서울 장안동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그 길이 남과 북까지 이어지기를 꿈꾼다.

벽을 짓기 전에 길을 그린다.
건물을 짓기 전에 관계를 설계한다.
결정하기 전에 700미터를 걷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함께 밥을 먹는다.

우리가 지금 그려야 할 것은 건물 한 채의 배치도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동선이다.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새로운 문명은 사람이 함께 걷는 곳에서 시작된다.

2026년 9월 5일, 건축사 春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건축

나주 심중매원에서 세종시 이도 심중매원으로

사람은 장소를 만들고, 장소는 다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2009년부터 이어온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영화와 건축, 장소와 기억, 신체와 시간, 경계와 걷기를 연결한 건축 연구 10편을 정리했습니다.

역사는 근거로 확인하고, 전승은 존중하며, 오늘의 해석은 분명히 밝힙니다. 그 위에 사람이 걷고, 머물고, 서로를 기다려 주는 공간을 생각합니다.

먼저 살아간 사람을 기억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살피고,
아직 만나지 못한 다음 사람에게 작은 그늘을 남기는 일.

세종시 이도 심중매원이 그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돌아갈 때는 마음속에 매화 한 송이가 더 피어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2026년 9월 22일, 건축사 이춘화

잘하는 사람을 살리는가, 끌어내리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삶의 기준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춘화 건축사입니다. 건축물을 설계하며 살아왔고, 집안의 일을 맡으면서 조상의 묘소와 제례, 후손에게 전할 가르침을 지키는 일에도 참여해 왔습니다.

삼풍참사와 영암고 기숙사 사건을 비롯해 여러 현장과 갈등을 거치면서 제게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밥상머리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집안일을 하면서 만났던 두 분의 어른이 있습니다. 도와주신 분들이 많지만, 먼저 세상을 떠나신 그 두 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만큼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입니다.

제가 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분들이 지키려 했던 일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영암고 기숙사 사건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마다 귀중한 인연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누군가 제 말을 듣고, 손을 내밀고, 함께 견뎌주었기 때문입니다.

927년, 지금의 대구 지역인 공산 동수에서 왕건의 군대가 후백제군에 포위되었습니다. 왕건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신숭겸과 김락은 힘껏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왕건은 간신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고려사』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신숭겸이 왕건의 갑옷을 대신 입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승입니다. 출신지도 기록과 전승이 다릅니다. 『고려사』는 그를 광해주, 곧 지금의 춘천 사람으로 적었고, 곡성에는 그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승이 이어집니다.

곡성의 전승을 따른다면 그는 옛 백제 땅이 길러낸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든 제가 읽는 것은 그 선택에 담긴 결기입니다. 더 큰일을 해낼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이 살아서 자기 몫을 해내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그 결기가 있습니까.

남이 나보다 잘하면 인정합니까. 그 사람이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돕습니까. 아니면 흠을 찾고, 공을 빼앗고, 끝내 끌어내리는 데 힘을 씁니까.

옛사람의 희생을 칭송하면서 오늘 곁에서 애쓰는 사람을 짓밟는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전해 들은 전의이씨 시조 이도 할아버지의 구전에도 같은 질문이 있습니다. 왕건을 두 번 사로잡았지만 살려 돌려보냈고, 다른 보상보다 이름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훗날 모함을 받아 왕 앞에 불려갔을 때, 왕건이 얼굴을 보고 자신을 살려준 사람임을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문헌에 전하는 금강 도하 이야기와는 줄거리가 다른, 제가 집안에서 전해 들은 구전입니다. 역사 기록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전승에서 권력과 인연의 속성을 읽습니다.

좋았던 인연도 이해관계가 바뀌면 나를 해치는 인연이 될 수 있다. 그때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보게 하는 것은 함께 겪었던 순간의 기억이다.

우리는 그 기억을 지키고 있습니까.

독립이 우리의 소원이었던 시간을 기억합니까.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었던 시간을 기억합니까. 서로를 적으로 부르기 전에 함께 살기를 바랐던 마음을 기억합니까.

저는 그 기억을 되찾는 길을 설계했습니다.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사랑나무에서 만나 철길을 건너 전의이씨 시조 묘소로 향하는 700m의 길입니다. 함께 걸으며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한 사람과 앞으로 지켜야 할 사람을 생각하는 문화경관길입니다.

제가 안내하는 동선으로는 전의역에서 택시로 약 7분, 걸어서 약 30분이면 출발점에 닿습니다. 그곳에서 700m를 걸어 올라갑니다.

훼손 전 시조 이도 묘역 전경
훼손 전 시조 이도 묘역

그런데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사라진 장소를 마주합니다.

2025년 8월 시조 묘소가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봉분 둘레석이 무너지고 흙이 드러난 묘소
2025년 8월, 훼손된 시조 묘소

우리는 훼손된 시조 묘소 현장을 정리하고 뒤편에 새로 모신 묘소에서 위안제를 2025년 9월 20일 지냈습니다.

새로 떼를 입힌 묘소
뒤편에 새로 모신 묘소
위안제 영상 한 장면. 기존 묘소 뒤편에 새로 모신 묘소 앞 풀밭에 차린 제물
2025년 9월 20일 위안제 영상 중 한 장면. 기존 묘소 뒤편에 새로 모신 묘소에서 위안제를 지냈다. 모자 쓴 어르신은 위안제에 함께한 인강 박광서 지사다.

이후 공주 지역공동체 도움으로 2025년 추향제 시조 묘제를 지냈습니다.

봉분 앞에 차린 제사상
2025년 추향제 시조 묘제

그러나 그 제례를 지냈던 묘소는 이후 사라졌습니다.

숲속의 맨흙 둔덕
제례를 지냈던 묘소가 있던 자리

앞서 훼손되었던 자리에는 2026년 4월 새로운 봉분이 생겼습니다.

석물 옆에 새로 생긴 봉분
2026년 4월, 훼손되었던 자리에 새로 생긴 봉분

새 봉분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의 훼손과 이후의 소멸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없어졌으며,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밝혀야 합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함께 정리하고 제사를 지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 와서 저를 도운 분들은 공주 지역공동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손길과 수고를 저는 기억합니다. 그 도움은 말로만 조상을 존경하는 것보다 무거운 실천이었습니다.

공주와 세종의 지역사회에 묻습니다. 함께 도왔던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있습니까. 그 수고를 인정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사실을 밝히고 제례의 기억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까.

세종시청과 세종북부경찰서에도 묻습니다. 2025년 훼손 당시 현장, 그해 제례 장소, 이후 사라진 묘소와 새 봉분의 위치를 각각 확인했습니까. 무엇을 조사했고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저는 아직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을 듣고, 확인한 사실과 조사 과정을 밝혀 주십시오.

아이들에게 조상을 공경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제사를 지낸 묘소가 사라진 경위에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삼국사기』가 백제 궁실을 설명한 이 말을 저는 건축사로서 삶의 기준으로 읽습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양심을 버리지 않고, 힘을 얻어도 다른 사람의 존엄과 공을 짓밟지 않는 태도입니다.

제가 요구하는 밥상머리 교육은 구체적입니다.

잘하는 사람을 인정한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다. 도움을 받았으면 기억한다. 남의 공을 빼앗지 않는다. 잘못을 보았으면 사실대로 말한다. 내 편의 잘못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그 기준은 공주에도, 세종에도, 남한에도, 북한에 사는 일가에게도 같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존중하며, 함께할 수 있는 일부터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세계인이 이 700m의 길에 오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시설을 넘어, 우리 삶을 지탱해 온 신뢰와 의리, 기억과 책임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전쟁을 막을 방어력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나게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신뢰를 쌓는 일에는 얼마나 힘을 쓰고 있습니까. 평화를 말하면서 그 실천에 필요한 시간과 자리는 만들고 있습니까.

세계가 분쟁으로 흔들리는 지금, 우리 안의 다툼에도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광화문에서, 국회에서, 지역사회에서 벌이는 싸움이 사실을 밝히고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한국인이 서로를 살리는 선택을 실천한다면, 세계에 보여줄 평화의 사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건축사로서 그 실천의 길을 700m에 담았습니다.

신숭겸의 이름을 아이에게 가르쳤다면, 다음에는 어른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잘하는 사람을 살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끌어내리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이르게 된 경험과 700m 문화경관길의 구상, 밥상머리 교육과 평화를 향한 생각은 제가 함께 펴낸 책 『동양평화론 2026』에 자세히 담았습니다.

『동양평화론 2026』 책 보기

2026년 10월 6일, 건축사 이춘화

2025년 가을, 이 길을 따라 추향제를 올렸다.

2013년, 소통의 마루가 만든 「미래행복체험관」 인트로(약 5분, 소리 없음). 어른들의 사랑의 눈물이 모여 교육에 새 희망이 생긴다는 생각은 이때 이미 있었다. 앞부분에 나오는 세상을 떠난 학생의 사진과 유서 화면은 흐리게 처리했다.

700미터 길을 묻고 답하는 공개 연구 시범판도 열어 두었다.
K-OMPHALOS 700M AI Archive 열기

삼풍참사 & 영암고기숙사

1995년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너진 뒤의 기록은 남는다. 무너지기 전의 경고는 잘 남지 않는다. 이 방은 무너지기 전의 기록을 남긴다.

2009년, 나는 영암고등학교 기숙사의 구조를 검토했고 안전에 대한 걱정을 문서로 남겼다. 그 뒤 17년 동안 이어진 기록을 날짜 순서로 적는다.

  1. 영암고등학교 기숙사 구조 검토. 안전 우려를 문서로 제기했다.
  2. 사단법인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검토. 교육청이 의뢰했다. 1차에서 내력이 부족하다고 나온 부재는 설계변경 때 이미 보강되었다는 전제 위에서, 최종 구조계산서는 구조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보았다. 다만 이 검토가 2층 상부 특허공법의 적합성을 인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에 밝혔다. 서류상 계산서를 본 검토였다.
  3.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 구조안전 보고서. 지어진 건물을 검토했다. 붕괴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장 시공이 구조설계와 다르게 이루어져 구조체의 안전율이 확보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실험적 성능평가 뒤 보강 방안을 정해야 한다고 적었다.
  4. 당초 설계용역을 맡은 건축사사무소가 교육청에 낸 사건개요 문서. 시공사가 설계 문제를 발견하고 수차례 설계변경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적었다. 나는 이 건물에 설계변경이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구조기술사회 검토의 전제는 실제 건물과 맞지 않는다.
  5. 광주지방법원 2009가단80496 판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문은 "하나의 현장에 대하여 수 개의 구조계산서가 존재하고 있었던 특이한 상황"이라고 적었다.
  6. 판결 확정증명을 발급받았다.
  7. 한국일보 지면 광고로 당시 대통령에게 실태 확인을 요청했다. 문중 어른 세 분이 실명으로 함께했다.
  8. 18년의 기록을 대통령비서실, 감사원, 국회 교육위원회에 등기로 제출했고 세 통 모두 배달이 끝났다. 7월 20일 감사원이 감사제보로 접수했다.
  9. 교육청 회신.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그 평가를 요구한 지 16년 만이다. 교육청은 2018년과 2024년 정밀안전진단에서 B(양호)등급을 받았고, 지금은 제3종 시설물로 연 2회 점검한다고 함께 밝혔다.
  10. 학생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열 통 썼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검토 보고서 결론 쪽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구조설계 검토 보고서(2010.2.3) 결론. 2층 상부 특허공법의 적합성을 인증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적혀 있다.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 보고서 4.2 구조안전성 및 대안, 4.3 안전검토에 대한 종합의견 쪽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 구조안전 보고서 중 4.2 구조안전성 및 대안, 4.3 종합의견.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2026년 7월, 광주를 찾은 배재고 학생들에게 첫 편지를 썼다. 그 뒤로 편지가 이어졌다.

숲길을 함께 걷는 학생들. 함께 걷는 700미터,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어른의 길.
배재고 학생들을 맞으며 만든 안내문
광주에 오는 배재고 학생들에게 (2026.7.6)

― 1980년 광주의 열다섯 살이, 2026년 열여덟 살 여러분에게

프롤로그

예순이 막 넘은 지금, 자주 열다섯 살의 저를 떠올립니다.

1980년 5월,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광주의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날, 제 또래들이, 대학생 형들이, 어른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른들의 여러 얼굴도 보았습니다. 눈을 감고 침묵한 어른이 있었고, 목숨을 걸고 사람을 살린 어른이 있었으며,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아픔마저 이용하는 어른도 있었습니다.

그날 마음속에 약속 하나를 새겼습니다.

"내가 책임질 나이가 되면,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말자."

그 약속 하나를 붙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길은 대체로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짐만은 단 한 번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열다섯 살의 다짐이, 오늘 이 편지를 쓰게 합니다.

1.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

여러분의 구호 소식을 들었을 때, 화가 나기보다 마음이 먼저 아팠습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만든 말을 따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책임은 언제나 가장 어린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그 말을 만든 어른들은 뒤로 물러섭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러분을 탓하는 편지가 아닙니다. 여러분보다 먼저, 대한민국의 어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람은 나이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무너진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로 어른이 됩니다.

여러분은 잘못을 인정하고, 일주일 만에 광주까지 내려왔습니다. 그 선택의 용기를 존중합니다. 다만 기억해 주십시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오늘의 사과는 10년 뒤 여러분이 어떤 어른이 되는가로 완성됩니다.

2. 생명보다 중요한 교육은 없다

저는 건축사입니다. 건축은 건물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책임입니다.

2009년, 한 고등학교 기숙사의 구조적 위험을 발견했습니다. 연구기관의 진단이 있었고, 법원의 기록이 남았습니다. 설계상 84명이 생활하도록 지어진 집 — 오늘 광주에 내려오는 여러분 일행과 같은 숫자입니다.

그 집은 18년째, 책임 있는 답을 듣지 못한 채 서 있습니다.

어떻게 18년을 버텼느냐고 묻는다면, 정의감이라고 답하지 않겠습니다. 외부 전문가라 자유로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빼앗길 자리도 끊길 월급도 없어 양심대로 말할 수 있었고, 값은 일감과 관계로 치렀습니다.

그러나 저를 부러지지 않게 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가정입니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저녁 밥상은 저를 기다렸고, 아내는 저를 믿었습니다. 아내는 저의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그 밥상이 없었다면 18년은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부모님과 함께 내려왔습니다. 여러분의 최후의 보루도, 이미 여러분 곁에 앉아 있습니다.

3. 건축가는 벽을 허무는 사람

구례고등학교 기숙사를 설계할 때였습니다. 최선의 설계를 하려면 구례고와 구례여중, 두 학교를 가르던 담장 전체를 허물어야 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회의를 멈추고, 양쪽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자 반대는 사라졌고, 결과는 전원 동의였습니다.

그날 확인했습니다.

건축은 콘크리트를 쌓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벽은 계산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허물어집니다.

4. 비판보다 대안

담장을 허문 손으로 돌을 던질 수는 없었습니다.

외국 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욕 대신, 사람의 마음을 다시 맞추자는 뜻으로 '라울'이라는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종의 심중매원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랑나무 한 그루에서 천년 전 조상의 묘소까지 이어지는 700미터의 길. 잠시 멈추는 길, 기다리는 길, 함께 건너는 길입니다. 함께 걷는 사람은 서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커피가 목적이 아니고, 길이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꾸는 공간 — 대한민국이 화해를 배우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는 구례고의 기적을 국가 차원의 신화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건축가의 길입니다.

무너뜨리는 것보다 올바르게 세우는 것 — 그것이 제가 아는 어른의 일입니다.

5. 이제는 어른들의 차례

민주묘지에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곳에는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에,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45년 전 그분들을 직접 보았던 사람이, 오늘 여러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학생에게는 일주일 만에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는, 왜 18년이 걸립니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어른들의 몫입니다.

에필로그

열다섯 살의 저는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예순이 막 넘은 오늘, 한 어른이 여러분 앞에서 어른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 다짐을 오늘 이렇게 지켰고, 이제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넘겨드립니다.

'이번만 넘기자' 하지 말고, 좋은 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 어른들도, 여러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광주는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광주는 용서를 선택한 도시이고, 여러분과 함께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세계가 위대한 한국인을 본받게 합시다. 세종의 사랑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평생 건물을 세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람을 살리는 사랑나무로 서 주십시오.

덧붙임. 이 편지에서 말씀드린 18년의 기록과 근거는 별도의 발표문으로 정리하여 공개하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 7월 6일
건축사 이춘화 드림

약속드린 18년의 기록을 공개합니다 — 두 번째 글 (2026.7.7)

1. 어제의 약속

어제 저는 광주에 온 배재고 학생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 끝에 이렇게 약속드렸습니다. "이 편지에서 말씀드린 18년의 기록과 근거는 별도의 발표문으로 정리하여 공개하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아이들의 날이었습니다. 저는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그 하루를 직접 보았습니다.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학생들이 한 제단 앞에 나란히 서서 흰 국화를 놓았고,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46년 전 열다섯 살의 제가 이 도시에서 보았던 것과 정반대의 장면을, 같은 도시에서 보았습니다. 제 딸이 그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아이들은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의 약속을 지키는 날입니다.

2. 그 자리에서 선언된 교육의 원칙

어제 그 자리에서 두 분 교육감의 연설을 직접 들었습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께서는 오늘의 걸음이 성찰과 성장의 걸음이라는 취지로 말씀하셨고,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사과의 만남의 시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 앞에서도 지키려 했던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습니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그것이 교육이 길러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두 연설이 선언한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인간의 존엄성. 사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저는 두 분의 말씀에 전부 동의합니다. 한 글자도 고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요청은 하나입니다. 그 원칙을 학생들에게만이 아니라, 교육행정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어제 편지에서 말씀드린 "그 집"의 기록

어제 편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설계상 84명이 생활하도록 지어진 집 — 그 집은 18년째, 책임 있는 답을 듣지 못한 채 서 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학생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는, 왜 18년이 걸립니까." 어제는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만 적었습니다. 오늘은 그 집의 이름과, 기록과, 그 질문의 수신인을 밝힙니다.

그 집은 전남 영암고등학교 기숙사입니다. 2009년 구조 검토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확인되었고, 2009년에 시작해 만으로 17년, 햇수로 18년째입니다. 확인된 사실만 기록합니다.

첫째.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는 2010년, 이 건물의 구조체가 안전율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며 실험적 성능 평가 후 보강 방안을 결정해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검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전라남도교육청이 스스로 발주한 용역이었습니다. 또한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검토 결론에서, 그 검토가 2층 상부 특허공법의 적정성을 인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둘째. 광주지방법원은 판결문(2009가단80496)에서, 하나의 건물에 대해 작성 시점이 다른 수 개의 구조계산서가 존재했던 "특이한 상황"이었음을 인정사실로 기록했습니다.

셋째. 김대중 교육감께서는 전라남도교육청 교육감 비서실 재직 시절, 면담을 요청하던 저에게 "김대중비서관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를 직접 보내신 바 있습니다.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귀하의 면담 요청에 대하여 충분한 숙의를 거쳐 보고드린 결과, 현재 공사가 중지되어 사실상 타절된 상태로 귀하의 주장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부분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되어 면담의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향후 처리 결과를 지켜봐 주시고,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행정 처리의 경우 법에 따라 적정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공사가 중지된 상태였다는 것과, 주장 내용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었다는 것 — 두 가지가 이 문자에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캡처 원본을 첨부합니다.

김대중비서관 명의로 받은 면담 요청 답변 문자 캡처
면담 요청에 대한 답변 문자 캡처. 발신 번호는 가렸다.

넷째. 지난 4월 30일 저는 내용증명 우편(등기 3505-3190-01098)으로 다섯 가지를 질의하며 수령일로부터 7일의 답변 기한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비서실 재직 당시 또는 그 이후의 인지 여부였습니다. 6월 1일 교육청의 회신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가 확인된 사실입니다. 이제 어제 선언된 원칙으로 여쭙습니다.

하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 알고 있다고 스스로 쓰셨던 이 문제에 대해, 이제 답하실 용기를 내주시겠습니까.

둘. 광주 시민들이 총칼 앞에서도 지키려 했던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면 —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건물에서 잠드는 학생들의 존엄성은 누가, 언제 지킵니까.

셋.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행정 처리는 법에 따라 적정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문자 속 약속은 — 언제 이행됩니까.

특정인의 처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청은 하나, 실태 확인이라는 행정 절차의 개시입니다. 학생들은 일주일 만에 해냈습니다. 4월에도 7일을 드렸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다시 한 번 일주일 안의 응답을 요청드립니다. 답변도 기록이 되고, 침묵도 기록이 됩니다.

4. 어제는 벽, 오늘은 기초

어제 편지에서 건축가는 벽을 허무는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오늘은 기초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건물에 균열이 생기면, 건축사는 벽을 탓하기 전에 기초를 봅니다. 학생들의 구호는 균열이었습니다. 그러나 균열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말의 문화 속에서 자랐고, 어른들이 세운 기준 위에서 걷습니다. 학생의 행동이 결과라면, 교육의 기준이 기초입니다. 기초가 바로 서 있으면 균열은 메워지고, 기초가 기울어 있으면 벽을 아무리 고쳐도 균열은 다시 옵니다.

5. 교육적 관점에서 남는 아쉬움 하나

어제의 참배에 대해, 질문의 형식으로 하나만 덧붙입니다.

어제 아이들은 국립 5·18 민주묘지, 곧 신묘역에 섰습니다. 그 곁에는 망월동 구묘역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수레와 청소차에 실려 온 이들이 합동 장례로 처음 묻힌 자리이고, 훗날 정권이 없애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지켜내어 1997년 신묘역 이장 뒤에도 참상 그대로 보존해 온 땅입니다. 어제의 일정이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까지 배우는 시간을 담았는지, 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정하지 않고 여쭙습니다. 참배가 의례로 끝나지 않고 교육이 되려면, 다음에 오는 아이들에게는 구묘역의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두 교육감께서 말씀하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의 완성일 것입니다.

6. 맺으며

어제 아이들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나무로 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 어른들에게는 그 나무가 설 수 있는 기초가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학생들은 이미 사과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화해했습니다. 이제 어른들이, 교육의 원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차례입니다.

2026년 7월 7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세 번째 침묵의 기록 — 세 번째 글 (2026.7.15)

1. 약속한 일주일이 끝났습니다

7월 7일, 저는 18년의 기록을 공개했습니다.

요청은 하나였습니다. 실태 확인이라는 행정 절차의 개시. 기한은 학생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일주일, 7월 14일이었습니다.

기한 마지막 날 아침, 국민신문고를 통해 게시 사실과 기한을 한 번 더 알렸습니다. 신청번호 1AA-2607-0588103, 오전 9시 50분. 교육청은 같은 날 오후 1시 15분 이 통지를 접수했습니다.

자정까지, 서면 응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전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답변도 기록이 됩니다. 침묵도 기록이 됩니다.

오늘은 그 침묵을 기록하는 날입니다.

2.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기록으로 셉니다.

첫 번째 침묵. 4월 30일, 내용증명 우편(등기번호 3505-3190-01098)으로 다섯 가지를 질의했습니다. 답변 기한은 7일이었습니다. 기한인 5월 7일까지 답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침묵. 6월 1일에야 회신이 왔습니다. 그러나 다섯 질의 중 첫 번째 — 비서실 재직 당시의 인지 여부 — 에 대한 답은 그 회신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응답의 형식을 갖춘 침묵이었습니다.

세 번째 침묵. 7월 7일의 공개질의와 7월 14일의 접수 통지에도, 기한 자정까지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 연표에는 침묵보다 무거운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교육청의 3월 12일 회신(신청번호 1BA-2602-0439540)은 이 사안을 "수사기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판단을 미루었습니다. 6월 1일 회신은 "공수처의 수사에 대해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석 달 사이, 같은 기관의 두 문서가 충돌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을 판단할 책임은, 지금 누구에게 있습니까.

3. 무엇에 침묵하고 있는가

침묵의 대상을 기록으로 확인합니다.

2010년, 전라남도교육청은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에 이 건물의 구조안전검토를 발주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교육청 스스로 발주한 용역이었습니다. 그 보고서의 결론부(4.3)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검토한 건물의 구조체는 안전율이 확보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같은 보고서는 하나의 조건을 달았습니다. 복합보에 대한, 그리고 철재기둥과 기둥헤드 접합부에 대한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후에 보강방안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결론부 원문 이미지는 증빙 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질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입니다.

그 실험적 성능평가는, 실시되었습니까.

이 질문 곁에 놓일 기록들이 있습니다. 제가 보관 중인 준공도면·시공사진·구조계산서의 대조 자료에는 다음이 확인됩니다. 준공도면과 시공사진의 불일치. 슬래브 두께의 도면과 실제의 차이(150mm와 120mm). 전단배근의 부재. 기둥헤드에 뚫린 지름 100mm 구멍 8개. 내진등급의 특등급에서 1등급으로의 하향. 각 항목의 원자료는 전의·예안이씨화수회본부가 보관하고 있으며, 언론과 관계 기관의 확인 요청 시 즉시 제시합니다.

보고서의 공개 여부에 대하여는 목포대학교가 2023년 회신으로 이미 답한 바 있습니다. 공개 여부는 발주기관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공개의 열쇠는 처음부터 교육청의 손에 있습니다.

4. 예상되는 답변에는 기록이 먼저 답합니다

두 가지 답변이 예상됩니다.

하나. 2024년 6월의 정밀안전진단으로 안전을 확인했다는 답변입니다. 6월 1일 회신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좁아집니다. 그 진단에 실험적 성능평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통상의 정밀안전진단은 외관조사와 비파괴검사가 중심입니다. 진단 보고서의 범위와 방법 항목을 공개하면 한 페이지로 확인되는 문제입니다. 진단을 받은 것과, 요구된 검증을 한 것은 다른 문장입니다.

둘. 취임 전에 완료된 사안이라는 답변입니다. 그러나 교육감께서는 비서실 재직 시절, 저에게 직접 보낸 문자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귀하의 주장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행정 처리의 경우 법에 따라 적정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취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취임 전부터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앎은 취임과 함께 책임이 되었습니다.

5. 참배와 교육 사이

이 도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7월 6일, 아이들의 참배는 진심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그 진심이 어른들의 성과로만 소비되고, 그 진심이 가리킨 책임 —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건물에서 잠드는 학생들 — 이 침묵 속에 남는다면, 아이들의 일주일과 어른들의 일주일은 무엇이 다릅니까.

일주일 전 저는 여쭈었습니다. 아이들의 참배 일정에 구묘역의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 질문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수레와 청소차에 실려 온 이들이 처음 묻힌 땅, 훗날 시민들이 지켜낸 그 땅의 이야기 없이 신묘역의 헌화만 남는다면 — 참배는 교육이 아니라 일정이 됩니다.

6. 기록은 다음으로 갑니다

4월 30일의 내용증명은 미회신 시의 후속 절차를 미리 알렸습니다. 오늘부터 그 절차를 이행합니다. 이 기록의 전문과 증빙 목록은 국회 교육위원회, 감사원, 대통령실에 제출되며, 언론의 확인 요청에는 원본으로 응합니다.

그러나 요청은 여전히 하나입니다. 특정인의 처벌이 아니라, 실태 확인이라는 행정 절차의 개시입니다. 지금이라도 절차가 개시되면, 저는 그 사실을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로 기록하겠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실험적 성능평가는, 실시되었습니까.

행정은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답변보다 침묵을 더 오래 기억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침묵까지,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2026년 7월 15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덧붙임(2026년 10월). 원자료 사본은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다. 언론과 관계 기관의 확인 요청은 건축사 이춘화에게 하면 된다. 연락처는 이 기록실 맨 아래에 있다.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가 — 네 번째 편지, 18년 현황점검 보고 (2026.7.20)
이 보고서는 위험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문서가 아닙니다. 18년 동안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지를 공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현황점검 보고서입니다.

1. 이 글의 성격

여러분에게 세 번의 편지를 썼습니다. 첫 편지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1980년의 열다섯 살이 2026년의 열여덟 살에게 보낸 글이었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약속의 이행이었습니다. 18년의 기록을 공개했습니다. 세 번째 편지는 시간의 기록이었습니다. 세 번의 침묵을 세었습니다.

이번 편지는 호소가 아닙니다. 요구도 아닙니다. 18년의 기록을 두 개의 목록으로 결산하는 보고서입니다.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

건축에서는 이것을 현황점검이라고 부릅니다. 건물을 고치기 전에, 먼저 무엇이 멀쩡하고 무엇이 상했는지 있는 그대로 적는 일입니다. 점검 없이 시작하는 공사는 없습니다.

2. 확인된 것

다음은 문서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첫째. 전남 영암고등학교 기숙사는 설계상 84명의 학생이 생활하도록 지어졌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84명 — 지난 7월 6일 광주에 온 여러분 일행과 같은 숫자라고, 첫 편지에 적었습니다.

둘째. 2010년, 목포대학교 건축안전연구소는 이 건물의 구조체가 안전율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후에 보강 방안을 결정해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검토는 전라남도교육청이 스스로 발주한 용역이었습니다.

셋째. 광주지방법원은 판결문(2009가단80496)에서, 하나의 건물에 작성 시점이 다른 수 개의 구조계산서가 존재한 “특이한 상황”을 인정사실로 기록했습니다.

넷째. 2023년 1월 9일, 이 사안은 한국일보 지면 광고로 공개되었습니다. 광고는 당시 대통령에게 건물의 실태 확인을 요청했고, 문중의 어른 세 분이 저와 함께 실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 사람의 문제 제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섯째. 2026년 3월 12일, 관할 교육청은 국민신문고 회신에서 이 사안을 수사기관의 고유 권한이라고 답했습니다. 같은 해 6월 1일 회신에서는 수사기관으로부터 통보받은 바 없다고 답했습니다. 두 회신은 같은 기관에서 나왔고, 서로 충돌합니다.

여섯째. 2026년 4월 30일 내용증명의 다섯 가지 질의 중 첫 번째 — 교육행정이 이 사안을 언제 알았는가 — 는 지금까지 답변되지 않았습니다.

일곱째. 2026년 7월 7일의 공개 질의에 대해, 답변 기한인 7월 14일까지 서면 응답이 없었습니다. 기한 당일 아침의 국민신문고 통지는 같은 날 오후 교육청에 접수되었습니다. 4월 30일 이후 세 번째 무응답입니다.

여덟째. 2026년 7월 15일, 이 기록 전체가 대통령비서실, 감사원, 국회 교육위원회에 등기우편으로 제출되었고, 세 통 모두 이튿날인 7월 16일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사안은 이제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국가기관 세 곳에 접수된 기록입니다.

3. 확인되지 않은 것

다음은 18년이 지나도록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첫째. 2010년 보고서가 요구한 실험적 성능평가가 실시되었는지. 실시되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인지. 16년째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2024년의 정밀안전진단에 그 실험적 성능평가가 포함되었는지. 포함되었다면 이 질문은 오늘로 끝납니다. 포함되지 않았다면, 2010년의 숙제는 아직 제출되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 같은 기관의 두 회신이 왜 충돌하는지.

넷째. 교육행정이 이 사안을 언제 처음 알았는지.

다섯째. 그리하여 — 이 건물이 지금 안전한지. 앞의 네 가지는 이 다섯째를 확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여섯째. 이것은 건물 밖의 항목입니다. 7월 6일 여러분이 참배한 국립 5·18 민주묘지 곁에는 망월동 구묘역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수레와 청소차에 실려 온 이들이 처음 묻힌 자리이고, 훗날 지우려는 손길로부터 광주 시민들이 지켜낸 땅입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 저는 여쭈었습니다 — 그날의 일정이 두 묘역이 왜 나뉘어 있는지를 배우는 시간까지 담았는지, 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두 분 교육감께서는 그날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동의하기에 다시 적습니다. 참배가 사진으로 남는 것과 교육으로 남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 질문 역시 두 주째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적습니다.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아직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건물에 대해, 이 상태가 18년 계속되고 있다는 것 — 그것이 이 보고서의 전부입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 저는, 지난 7월 6일 민주묘지에서 선언된 교육의 원칙 세 가지를 받아 적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인간의 존엄성. 사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위의 목록은, 그 원칙이 학생만이 아니라 행정에도 적용되기를 기다리는 목록입니다.

4. 왜 이제 국가 차원인가

저는 이 질문을 순서대로 밟아 왔습니다. 관할 교육청에 물었고, 국민신문고로 물었고, 내용증명으로 물었고, 공개 질의로 물었습니다. 소관 행정이 답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여러 번 있었습니다.

만약 그 과정만으로 충분했다면, 국민은 이미 명확한 설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듣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안이 소관 행정의 손을 떠났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요청은 이번 정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2023년에는 신문 지면으로 당시 대통령에게 실태 확인을 요청했고, 2026년에는 등기우편으로 지금의 대통령비서실에 제출했습니다. 정부가 바뀌는 동안에도 질문은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파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일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올해 4월 16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관계기관의 보고를 종합하여, 이 건물의 현재 안전성과 그동안의 조치 결과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 그것은 처벌이 아닙니다. 점검입니다. 국가가 평시에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국민은 새로운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종합하여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5. 여러분에게

첫 편지에서 저는 물었습니다. 학생에게는 일주일 만에 사과를 요구하면서, 학생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는 왜 18년이 걸립니까. 네 번째 편지에서 저는 그 질문을 목록으로 바꾸었습니다. 질문은 잊힐 수 있지만, 목록은 하나씩 지워질 때까지 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기록의 출발점은 2009년의 구조 검토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때 건축사의 일을 했을 뿐이고, 지금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사는 안전을 추측하지 않습니다. 확인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확인을 요청합니다.

여러분은 이 편지들의 수신인이면서, 이 보고서의 이해당사자입니다. 여러분 또래의 학생들이 오늘 밤에도 그 건물에서 잠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광주에 오는 날에는, 신묘역에서 걸음을 멈추지 말고 구묘역까지 걸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 짧은 길이, 어느 수업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닫힌 문서가 아닙니다. 확인되지 않은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확인되는 날, 같은 자리에서 갱신됩니다. 그 확인이 행정의 응답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고, 저는 아직 그 결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록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2026년 7월 20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2023년 1월 9일 한국일보 6면 하단 광고. 불안정 판정을 받은 전남 영암고 기숙사에서 학생들을 재워서는 안 된다는 내용
첨부 ① 한국일보 지면 광고(2023.1.9)
대통령비서실, 감사원, 국회 교육위원회 앞 등기우편 세 통의 배달완료 기록
첨부 ② 등기 배달완료 기록 3건(2026.7.16)

추기(2026.7.20 11:19). 이 보고서를 게시한 날, 감사원으로부터 위 등기 제출 건이 감사제보로 접수되어 국민제안감사2국 3과 광주센터에 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접수번호 2026-제보-12883). 세 기관 중 첫 번째 기관이 절차를 시작했다.

절차는 끝났다, 이제 교육을 확인할 시간 — 다섯 번째 편지 요약 (2026.7.22)

다섯 번째 편지를 올립니다. 7월 6일부터 22일까지, 열이레(17일)의 기록입니다.

열이레 동안 절차는 하나도 빠짐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사과가 있었고, 용서가 있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이 세 차례 실시되었고, 징계는 재심의에서 감경되었으며, 화해가 선언되었고, 11월 3일의 교류전까지 제안되었습니다. 절차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열이레 안에 또 하나의 기록이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배재고 재학생 한 명의 증언입니다. 서른여 명 중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잠들었다는 것, 어떤 표현이 왜 혐오 표현인지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구호가 지금도 농담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증언은 공개된 언론 인터뷰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며, 앞으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면 그 또한 함께 기록하겠습니다.

건축에는 준공식이 있고, 준공검사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거주 후 평가가 있습니다. 사람이 실제로 살아본 뒤 묻는 것입니다. 설계한 대로 살아지는가.

건물은 준공식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살아본 사람의 확인으로 완성됩니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출된 평가서는 한 장뿐입니다. 그리고 그 한 장은 이렇게 읽힙니다.

빛이 들지 않았다.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한 장의 평가서만으로 건물 전체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장의 평가서를 읽지 않은 채 완공을 선언할 수도 없습니다. 확인 없이 선언되는 마무리를, 건축은 완공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서른여 명이 잠든 교실에서 깨어 있던 학생 한 명이 요구했습니다. 무엇이 혐오 표현이며,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를 가르쳐 달라. 살아본 사람이 도면의 빈칸을 정확히 가리켰습니다.

이제는 어른들의 몫입니다. 마무리를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그 빈칸을 채우는 일입니다.

절차는 끝났습니다. 이제 교육을 확인할 시간입니다.

그 답이 확인되는 날까지, 기록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2026년 7월 22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이것은 다섯 번째 편지를 알리며 쓴 요약이다. 전문은 옮겨 싣는 중이다.

하나의 질문에 세 개의 회신이 왔습니다 — 여섯 번째 글 (2026.8.3)

1. 갱신의 약속을 지킵니다

네 번째 편지에서 저는 약속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확인되는 날, 같은 자리에서 갱신하겠다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킵니다. 7월 하순, 교육청으로부터 세 개의 회신이 도착했습니다.

2. 84일 만의 답

7월 23일 오후 2시 43분,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답변했습니다(신청번호 1AA-2607-0588103, 담당 교육시설과).

4월 30일 내용증명의 첫 번째 질의, 곧 교육행정이 이 사안을 언제 알았는가에 대한 답이 이 답변서에 처음으로 담겼습니다.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귀하가 제기한 민원 과거 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영암고 기숙사 증축은 현 교육감이 비서실장 취임(2011년 12월) 이전 설계 및 시공(2009년 1월~2010년 4월) 완료된 사항으로 2026년 6월 1일 회신한 바 있으며, 교육감 취임(2022년 7월) 이후 영암고 기숙사 관련 언론보도(2023년 7월)를 통해 인지하였습니다."

질문한 날로부터 84일 만입니다. 답변도 기록이 됩니다. 먼저 그 사실을 기록합니다.

3. 그 답 곁에 놓이는 기록

이 답 곁에는, 이미 공개된 기록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교육감께서 교육청 비서실 재직 시절 저에게 직접 보내신 문자입니다. 두 번째 편지에 캡처 원본과 함께 공개했습니다.

"귀하의 주장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부분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되어..."

같은 문자에는 이렇게도 적혀 있습니다.

"현재 공사가 중지되어 사실상 타절된 상태로..."

두 문서를 나란히 놓고 여쭙습니다.

하나. 답변서는 2023년 7월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했다고 합니다. 문자는 비서실 재직 시절에 이미 "상당 부분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두 문서 중 어느 쪽이 맞습니까.

둘. 답변서는 시공이 2010년 4월에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문자는 "현재 공사가 중지되어 사실상 타절된 상태"라고 합니다. 완료된 공사가 어떻게 중지 상태로 언급됩니까.

셋. 질문은 언제 지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알았는가였습니다. 건물이 취임 전에 지어졌다는 것이, 재직 중에 몰랐다는 뜻이 됩니까.

4. 엿새 뒤, 같은 교육청의 두 통지

세 개의 회신 중 나머지 둘은 답변이 아니라 연장 통지였습니다.

7월 29일, 교육청은 같은 사안의 다른 경로 민원(1BA-2607-0894551, 대통령비서실 경유)에 대해 처리기한을 8월 7일로 연장한다고 통지했습니다.

7월 30일, 7월 21일 접수된 또 하나의 우편 민원(1BA-2607-0989957)에 대해 처리기한을 8월 11일로 연장한다고 통지했습니다.

기록으로 셉니다. 2월의 민원도 연장되었습니다(2월 27일에서 3월 11일로). 5월의 민원도 연장되었습니다(5월 20일에서 6월 1일로). 그리고 7월의 두 민원도 연장되었습니다. 우편으로 제기된 민원 네 건이, 네 건 모두 연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7월 23일에 이미 답하신 질문이라면, 엿새 뒤의 연장은 왜 필요했습니까. 연장이 필요했다면, 7월 23일의 답변으로는 무엇이 부족했습니까.

이미 답한 질문에는 연장이 필요 없습니다. 연장이 필요한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는 것입니다. 두 문장이 같은 주에 같은 기관에서 나올 수는 없습니다.

5. 건축사가 아는 장면

저는 이 장면을 압니다.

광주지방법원 판결문(2009가단80496)은 이 건물에 대해, 하나의 건물에 작성 시점이 다른 수 개의 구조계산서가 존재한 "특이한 상황"을 인정사실로 기록했습니다. 17년 전, 이 사안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여름, 하나의 질문에 세 개의 회신이 존재합니다. 이미 답했다는 답변서 하나와, 답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연장 통지 둘.

하나의 건물에 여러 개의 구조계산서. 하나의 질문에 여러 개의 답변서. 건축사는 이런 서류를 받으면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서류들이 서로 다투고 있으면, 건물이 아니라 서류부터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6. 그리고 처음의 질문은 그대로 있습니다

인지 시점에 대한 답은 왔습니다. 그 답의 앞뒤가 맞는지는 위에서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였던 질문에는, 세 개의 회신 어디에도 답이 없습니다.

그 실험적 성능평가는, 실시되었습니까.

2010년 교육청이 스스로 발주한 보고서가 요구한 검증입니다. 진단 보고서의 범위와 방법 항목 한 페이지면 확인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그렇게 요구된 이래, 16년째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 다음 기록의 날짜

교육청이 스스로 정한 새 기한이 있습니다. 8월 7일과 8월 11일입니다.

저는 그 기한을 기다리겠습니다. 어떤 답이 오든, 답이 오지 않든, 같은 자리에서 같은 크기로 기록하겠습니다. 실태 확인이라는 행정 절차가 개시된다면, 그 사실을 가장 크게 기록하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바라는 결말이라는 것도 변함없이 함께 적어 둡니다.

두 분 교육감께서는 아이들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들이 이 문서들을 읽는다면, 이미 답했다는 답변서와 답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연장 통지가 같은 주에 나온 것을 본다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아이들은 어른의 말이 아니라 어른의 문서에서 배웁니다.

학생들은 일주일 만에 해냈습니다. 어른들은 넉 달째, 네 번의 연장 속에 있습니다.

답변도 기록이 됩니다. 연장도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기록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2026년 8월 3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7월 23일 국민신문고 민원 답변서. 과거 인지 여부에 대해 2023년 7월 언론보도로 인지했다고 답함
첨부 1. 7월 23일 교육청 답변서(신청번호 1AA-2607-0588103)
국민신문고 처리기한 연장 알림 두 건, 7월 29일과 7월 30일
첨부 2. 처리기한 연장 통지(7월 29일, 7월 30일)
16년 만에 답이 왔습니다 — 일곱 번째 글 (2026.8.10)

8월 7일 오후 1시, 휴대전화가 두 번 울렸습니다.

교육청의 답변이었습니다. 두 개의 민원에 대한 답이 1분 간격으로 왔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연장한 기한의 마지막 날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한을 나흘 남긴 채였습니다.

저는 이런 회신을 16년 동안 받아왔습니다. 대부분은 열어보기 전에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수사 중이라 답할 수 없다, 이미 회신한 바 있다,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되었다. 그런 문장들이었습니다.

이번 답변서에는, 제가 16년 동안 기다린 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으나"

없다고 합니다.

2010년 여름, 교육청이 스스로 목포대학교에 맡긴 구조안전 검토가 있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이 건물의 이론적 안전율이 확보되지 않으니, 실험으로 확인한 뒤에 보강방안을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 보고서가 제출된 날이 2010년 8월 6일입니다. 이번 답변이 온 날이 2026년 8월 7일입니다. 만 16년하고 하루가 걸려, 그 실험을 한 자료는 없다는 답이 돌아온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 답변이 고마웠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문서가 이 질문에 사실로 답했습니다. 답변도 기록이 됩니다. 저는 이 답변을 고맙게 기록합니다.

약속한 대로, 교육청이 함께 적어 보낸 내용도 같은 크기로 기록합니다. 2018년에 정밀안전진단과 내진성능평가를 해서 B(양호)등급과 인명안전(LS) 평가를 받았고, 2024년에 전국입찰로 다시 진단해서 B(양호)등급을 받았으며, 외부 구조기술사 세 분의 교차검증과 한국교육시설안전원의 평가까지 거쳤고, 지금은 제3종 시설물로 지정해 해마다 두 번씩 점검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청이 이 건물을 위해 한 일을 이만큼 자세히 밝힌 것은 처음입니다. 그것도 처음이니, 기록합니다.

다만 건축사로서,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남습니다.

2010년 보고서가 하필 "실험"이라는 말을 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구조의 복합보는 성능을 이론적으로 적절하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고서 스스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계산으로 안 되니 실험을 하라 했는데, 계산에 기초한 진단으로 다시 확인했으니 되었다고 하면 — 그것으로 된 것입니까.

답변서가 보고서에서 옮겨 적은 문장이 있습니다.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는 문장입니다. 그 문장은 보고서에 실제로 있습니다. 다만 원문에는 앞에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검토한 건물에 설계하중이 전부 작용하지 않고 있고 구조시스템에도 여력이 있어서 현재 상태에서." 지금 건물에 짐이 덜 실려 있어서 낮다는 뜻입니다. 설계대로 다 실려도 낮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기숙사의 설계 인원은 84명입니다.

그리고 옮기지 않은 문장이 있습니다. "검토한 건물의 구조체는 안전율이 확보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보고서의 결론입니다. 이 문장은 답변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 이 문장만 집에 두고 왔는지, 그것도 여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보고서는 실험을 한 뒤에 보강방안을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실험이 없었으니, 실험에 근거한 보강방안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답변서는 진단을 말했지만 보강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진단은 살펴보는 일이고, 보강은 고치는 일입니다. 16년 동안 이 건물은 여러 번 살펴졌습니다. 고쳐진 적이 있습니까.

답변서의 끝에는 이런 안내가 붙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문의를 반복하면 앞으로는 종결처리될 수 있다고.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같은 질문을 반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실시되었습니까, 라고 물었고, 실시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질문은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답을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 그것은 민원이 아니라 어른들의 양심이 할 일입니다.

기숙사의 학생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내는 건물을 두고 어른들이 16년 동안 문서를 주고받았습니다. 실험이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있었고, 실험 결과를 내라는 공문이 있었고, 실험한 자료는 없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그 사이 여러분은 그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전에도 쓴 문장인데, 오늘은 하나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이 문장 아래에 교육청의 답변서가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일주일 만에 사과를 해냈습니다. 어른들은 16년이 걸려서, 없다는 말이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이 나쁜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문서가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에서만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제 그 일을 시작하면 됩니다.

기록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록은, 종결처리되지 않습니다.

2026년 8월 10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8월 7일 교육청 답변서.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으나, 2018년과 2024년 정밀안전진단 B등급이라고 답함
첨부 ① 8월 7일 교육청 답변서 전문(신청번호 1BA-2607-0989957)
8월 7일 오후 1시 4분과 5분, 답변 도착 알림 두 건
첨부 ② 답변 도착 알림(8월 7일 오후 1시 4분·5분)
좋은 땅보다 좋은 사람이 먼저입니다 — 여덟 번째 편지 요약 (2026.8.12)

1993년 9월, 『월간 예향』에 한 지관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박광서 지사입니다.

기사 끝에는 이런 문장이 큼직하게 적혀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지관은 한 집안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는 전남 농민교육원의 공무원이었습니다.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산에 올랐고,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명당을 구하려면 부귀와 허영을 버려야 한다는 말도 그 기사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2025년 8월 31일,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산3-1.

오래 알고 지낸 광주의 한의사 선생님과, 그분의 오랜 스승과 제자 인연을 따라 저는 박 지사님을 그날 처음 만나 뵈었습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분이 땅을 보는 분을 저에게 데려다준 것입니다.

우리는 시조 이도(李棹) 할아버지의 묘역이 있는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숲길입니다.

그 길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땅을 가지고도 그곳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거짓말하고, 책임을 피하고, 다음 세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곳을 명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름 없는 땅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잘못했을 때 사과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곳이 오히려 좋은 땅 아닐까.

그래서 700m의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멈추어 생각할 줄 아는 사람. STOP.

다른 사람을 기다려 줄 줄 아는 사람. WAIT.

혼자 먼저 건너지 않고 함께 건널 줄 아는 사람. CROSS.

학생 여러분은 지금 수학과 영어와 역사를 배우고 있지만, 언젠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시험을 치릅니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그 시험에는 정답지가 없습니다.

건축사로서 한 문장을 남깁니다.

좋은 땅이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갈 때 그곳이 비로소 좋은 땅이 됩니다.

2026년 8월 12일
건축사 이춘화

월간 예향 1993년 9월호 표지 부분. 이색인물, 육여사 묏자리 보고, 지관 박광서
『월간 예향』 1993년 9월호(광주일보사) 첫 쪽 일부
기사 끝 문장: 의사는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지관은 한 집안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같은 기사 끝에 큼직하게 실린 문장
한겨레신문 1993년 5월 2일 이땅의 사람들, 지관 박광서씨, 명당 찾아 방방곡곡 30년
앞서 실린 『한겨레신문』 1993년 5월 2일 기사 제목
2025년 8월 31일, 숲길을 함께 걷는 세 사람의 뒷모습
2025년 8월 31일,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그 길
숲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야기하는 세 사람
같은 날, 같은 길

이것은 여덟 번째 편지를 알리며 쓴 요약이다. 전문은 옮겨 싣는 중이다.

대통령의 말씀은 어디까지 내려왔습니까 — 아홉 번째 편지 (2026.8.28)

어제, 네팔 홍수로 우리 국민이 위험에 처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회의를 열고 말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과잉 대응은 없다는 각오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달라."

저는 이 말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고립되었던 국민들이 하루 만에 구조되었습니다.

국가는 이렇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 31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이 모두 같은 말을 해왔습니다.

국민의 생명이 먼저다. 사고가 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왜 우리는 31년째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재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재난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난.

일어난 재난에는 하루 만에 헬기가 뜹니다.

그러나 예방은 성공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막아낸 재난은 뉴스에 나오지 않고, 일어나지 않은 재난은 아무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진짜 국가의 실력은 헬기가 뜨는 날이 아니라, 헬기가 뜰 일을 만들지 않는 평범한 날들에 있습니다.

저는 건축사입니다. 예방이 저의 직업입니다.

2010년 8월 6일, 교육청이 스스로 발주한 보고서가 영암고 기숙사를 실험으로 확인한 뒤 보강을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2026년 8월 7일, 만 16년하고 하루가 지나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실험적 성능평가를 실시한 자료는 없으나"

없다고 합니다.

그 사이 학생들은 그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께 묻습니다.

네팔의 국민에게 하루 만에 닿았던 그 각오가, 전남의 기숙사 한 채에는 왜 16년째 닿지 않습니까.

일어난 재난에 과잉 대응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은 재난에는 과잉 확인이 없어야 합니다.

확인해서 아무 일 없으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결말입니다.

그리고 학생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올가을, 세종의 700미터에서 만납시다.

사랑나무에서 출발해 철길건널목 앞에 멈추었다가 묘역까지 함께 걷고, 내려와서 밥 한 끼 같이 먹읍시다.

일 년에 딱 한 번. 그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올가을, 700미터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밥은 먹읍시다.

2026년 8월 28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재판이 끝난 자리에서 — 열 번째 편지 (2026.9.17)

배재고 학생 여러분.

어제 법원에서 판결이 하나 나왔습니다.

2020년 6월 북한이 폭파한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두고, 우리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부가 청구한 446억 2,641만 722원을 그대로 인정하고, 소송비용도 북한이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낸 첫 소송이었고, 제소 3년 3개월 만의 결과입니다.

저는 이 판결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책임을 판단해야 합니다. 기록해야 합니다. 권리를 보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법의 일이고, 법원은 그 일을 했습니다. 판결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편지는 재판이 소용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법이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 하나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이 할 수 없는 일

법원은 누가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폭파된 건물을 다시 세울 수는 없습니다.

판결문이 헤어진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북한이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국군포로, 6.25 납북 피해자, 연평해전 유족의 소송에서도 같은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배상금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남과 북은 언제까지 법정에서만 만날 것입니까.

재판은 책임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해까지 판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구별이 중요합니다.

법의 역할이 끝나는 곳에서 정치의 역할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정치가 움직이지 못하는 곳에서 문화가 먼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건축이 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순서

학생 여러분.

이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폭파는 북한이 했습니다.

재판은 남한이 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은 누가 합니까.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제로 끝났습니다. 북한이 할 일은 북한이 정할 것입니다.

남은 자리에서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시 만날 곳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만날 사람이 아직 없어도 자리는 마련해 둘 수 있습니다. 문이 언제 열릴지 몰라도 문은 달아 둘 수 있습니다.

저는 판사가 아닙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다시 만날 장소를 짓는 것뿐입니다.

장안동, 하나의 제안

서울 장안동에 제가 관여해 온 현장이 있습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지하층 공사를 위한 흙막이 말뚝을 시공한 뒤, 공사가 멈춰 서 있는 땅입니다.

저는 그 자리를 이렇게 쓰자고 제안합니다.

처음에는 남북 일가 연락사무소로 씁니다. 남한과 북한, 해외에 흩어진 일가가 서로를 찾고 연락하는 곳입니다.

다음에는 타성으로 넓힙니다. 한 성씨만의 자리가 아니라,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이면 성을 묻지 않는 자리로 만듭니다.

마지막에는 지역공동체와 함께 씁니다. 일 년에 며칠만 문을 여는 건물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평소에 드나드는 건물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건물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연락사무소를 대신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국가 간 협상기구도 아닙니다. 민간이 한 집안에서 시작해 이웃까지 넓혀 가자는 건축사의 제안일 뿐입니다.

700미터

세종 전의에는 사랑나무에서 시조 묘역까지 700미터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에는 철길이 있습니다.

사람은 철길 앞에서 멈춥니다. STOP.

기다립니다. WAIT.

그리고 건넙니다. CROSS.

이 700미터는 남북문제를 푸는 처방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양보하라는 협상안도 아닙니다.

결정하기 전에 함께 걸어보자는 것뿐입니다.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만 들고 걷지 않습니다. 내가 틀렸을 가능성까지 데리고 걷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습니다.

내가 보지 못한 한 사람이 없는가.

이 질문은 한쪽만 향하지 않습니다. 남쪽에도 묻고, 북쪽에도 묻고, 이 글을 쓰는 저에게도 묻습니다.

기록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1980년 5월,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때 광주에서 벌어진 일과 광주의 어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 그날의 일을 두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지켜보았습니다.

거기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이 사라진 자리는 반드시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채웁니다.

그래서 기록해야 합니다. 무엇이 있었는지, 무엇이 사라졌는지, 누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적으면 됩니다. 확인되는 것은 사실대로 남기면 됩니다.

여러분이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입니다.

화를 내는 법이 아니라 적어 두는 법입니다.

11월 10일

그리고 이것은 계획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

작년에 그 길에서 추향제와 시조 묘제를 지냈습니다. 묘소가 훼손된 뒤였지만 지역공동체가 함께 현장을 지키고 정리해 주어서 치를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11월 10일입니다.

남쪽의 일가가 걷습니다. 해외에 사는 일가도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법이 허용한다면 북쪽의 일가도 함께 설 수 있도록 통일부에 검토를 요청해 두었습니다.

북쪽이 오지 못해도 그날은 열립니다. 다만 문을 닫아 두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학생 여러분도 오십시오. 종교가 달라도 좋고,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아도 좋습니다. 걷고, 서 있고, 내려와서 밥 한 끼 먹으면 됩니다.

함께 갑시다

저는 건축사가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700미터를 걸으면 남북문제가 풀린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 길은 구호가 됩니다.

제가 찾은 답은 훨씬 작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볼 수 있는 답입니다.

함께 걷는 것.

멈추고, 기다리고, 건너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함께 밥을 먹는 것.

법원은 밥을 먹지 않습니다. 국가도 밥을 먹지 않습니다. AI도 밥을 먹지 않습니다.

사람은 함께 밥을 먹습니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기록할 것은 기록하고, 법으로 판단할 것은 판단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낼 수는 없습니다.

폭파된 건물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연락할 곳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만날 장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걸을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장안동은 장소입니다. 700미터는 길입니다. STOP, WAIT, CROSS는 방법입니다.

폭파되었다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훼손되었다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묘소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는 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700미터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11월 10일, 그 길에서 만납시다.

결정하기 전에, 함께 700미터를 걸어라.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ers together.

그리움이 남아 있는 한, 다시 만날 길도 남아 있습니다.

2026년 9월 17일
광주에서, 건축사 이춘화

English Summary

On 16 September 2026, the Seoul Central District Court ordered North Korea to pa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44.6 billion won for destroying the Inter-Korean Liaison Office in Kaesong in June 2020. It was the first such suit brought by the government. No damages award against North Korea has ever been collected.

A court can assign responsibility. It cannot rebuild what was destroyed, and it cannot bring separated people back together.

Chunhwa Lee, a Korean architect, proposes something smaller and actually possible. In Jeonui, Sejong, a 700-metre path runs from a tree called the Tree of Love, across a railway line, to an ancestral burial ground. At the crossing, a person must STOP, WAIT, and then CROSS together.

On 10 November 2026, families will walk that path for the annual ancestral rite, as they did last year. Relatives living abroad are invited. Where law and circumstance allow, relatives in the North are invited too, but the day will proceed whether or not they can come. The invitation is not a condition.

This is not a political solution to the division of Korea. It is one architect's answer: before you decide, walk 700 metres together, carrying the possibility that you yourself are wrong, and asking whether anyone has been left unseen.